~Wonderful World 2018. 11. 5. 08:30

아늑

  민왕기




  쫒겨온 곳은 아늑했지, 폭설 쏟아지던 밤

  캄캄해서 더 절실했던 우리가

  어린 아이 이마 짚으며 살던 해안 단칸방

  코앞까지 밀려온 파도에 겁먹은 당신과

  이불을 뒤집어쓰고 속삭이던,

  함께 있어 좋았던 그런 쓸쓸한 아늑 


  아늑이 당신의 늑골 어느 안쪽일 거란 생각에 

  이름 모를 따뜻한 나라가

  아늑인 것 같고, 혹은 아득이라는 곳에서

  더 멀고 깊은 곳이 아늑일 것 같은데

  갑골에도 지도에도 없는 아늑이라는 지명이

  꼭 있을 것 같아

  도망 온 사람들 모두가

  아늑에 산다는, 그런 말이 있어도 좋을 것 같았던


  당신의 갈비뼈 사이로 폭폭 폭설이 내리고

  눈이 쌓일수록 털실로 아늑을 짜

  아이에게 입히던

  그런 내말이 전부였던 시절

  당신과 내가 고요히 누워 서로의 곁을 만져보면

  간간한, 간간한 온기로

  사람의 속 같던 밤 물결칠 것 같았지


  포구의 삭은 그물들을 만지고 돌아와 곤히 눕던 그 밤

  한쪽 눈으로 흘린 눈물이

  다른 쪽 눈에 잔잔히 고이던 참 따스했던 단칸방

  아늑에서는 모두 따뜻한 꿈을 꾸고

  우리가 서로의 아늑이 되어 아픈 줄 몰랐지

  아니 아플 수 없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