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이월-김병호(1971~ )

~Wonderful World 2018. 11. 7. 07:52
이월                   
-김병호(1971~ )  
  
시아침 11/07

시아침 11/07

신작시 청탁을 했습니다
시인은 가타부타 말이 없이 점심이나 하자 했습니다  
  
아직 꽃이 오지 않아 바람이 찼습니다 
  
시인은 냄비 속의 조린 무를 찾아 고봉밥 위에 올려주며 시는 나중에 줄 수 있겠다, 했습니다 
대학생이 되는 막내딸 이야기와 새로 배우는 동시 이야기도 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출가 소식을 들었습니다  
  
툭, 툭, 돌멩이를 차며 걷던 뒷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봄이 지나도 이월이 가지 않았습니다
 
  
시인의 길과 승려의 길은 세상의 외곽 어딘가에서 갈라진다. 승려의 길은, 외곽의 외곽으로 종적을 감춘다. 그 길을 마음에 모신 한 시인에게 다른 시인이 시를 청탁했다. 이월의 어느 밥상을 묵묵히 돌봐주던 사람은 무슨 절대를 본 걸까. 그의 막내딸이 꽃처럼 피어나고 꽃들이 딸처럼 곱게 피어나려 하는 계절에. 
 
<이영광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이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