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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이 타는 가을 강-박재삼(1933~1997)
~Wonderful World
2018. 11. 15. 08:29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박재삼(1933~1997)

시아침 11/13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 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친구의 사랑도 내 첫사랑도 강물 위에 불탄다. 하구의 유속은 느린데 그 숨죽인 울음은 저미듯 찬란하다. 첫사랑의 신열은 왜 식을 줄 모르나. 시는 사랑더러 그만 바다에 빠져 죽자, 죽자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미친 사랑은 잘 죽지도 않는다. 바다는 하구에서조차 아직 멀다.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울음이 타는 가을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