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핑 시들...^~

식구를 품앗이하다-정와연(1947~)

~Wonderful World 2018. 11. 22. 00:30

식구를 품앗이하다-정와연(1947~)


식구라는 말은

같이 밥 먹는 사이라는데

허름한 식당, 한 자리씩 차지하고 밥을 먹는 사람들

음식이 나오고 숟가락을 집어 들다 든 생각

이 숟가락은 또 얼마나 많은

입속으로 들락거렸던 용기(用器)인가

어쩌다 시비가 붙었던 사람과

생면부지의 사람과도 나눈 숟가락 하나의 관계

그 관계들을 식구라고 부른다면

허기도 포만도 다 이해할 수 있겠다는 것

음식 나오기 전 빈 숟가락을 입에 대면

차가운 듯, 밍밍한 듯한 맛

한 음식을 같은 맛으로 먹는 관계들


빠끔히 보이는 주방 한쪽

바구니에 수북이 쌓인 숟가락들,

세제 몇 방울로 깨끗이 닦이는 가족들은

몇 대가 흐른 뒤에는

서로가 밍밍한 빈 숟가락의 맛처럼

말끔하게 남남이 되고 만다는 것


숟가락들은 식구를 품앗이하는 도구지만

또 어느 쓸쓸한 독거들의

밥맛없는 요즘의 밥상머리

한 상에 둘러않아 밥 먹던 식구들은 옛사람이 되었고

밥맛 없고 입맛 없는 사람들은

일회용 식구를 찾아 나서거나

이웃과 품앗이하는 숟가락 맛에

더 친숙해 있다는 것


시집 '네팔 상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