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빅 풋--석민재(1975~ )
~Wonderful World
2018. 11. 28. 17:31
빅 풋
-석민재(1975~ )
군함처럼 큰 발을 끌고
아버지가 낭떠러지까지
오두막집을 밀고 갔다가
밀고 왔다가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스텝을 맞추며
말기 암, 엄마를 재우고 있다
죽음을 데리고 놀고 있다
죽을까 말까 죽어줄까 말까
엄마는 아빠를 놀리고 있다
아기처럼 엄마처럼
절벽 끝에서 놀고 있다
커다란 체구의 아버지가 말기 암 엄마를 재우고 있다. 휠체어를 밀며, 아마 춤추는 시늉을 하는 듯하다. 그것이 캄캄한 목숨의 낭떠러지에 희미한 웃음꽃을 피운다. 딸이 보기에 아버지는 놀고 있고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놀리고 있다. 엄마는 아기 같고 아빠는 엄마 같다. 아니, 둘 다 그냥 철부지다. 웃는 듯 우는 듯한 딸의 눈에서 절벽 끝이 한순간 지워진다.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빅 풋
-석민재(1975~ )

시아침 11/28
아버지가 낭떠러지까지
오두막집을 밀고 갔다가
밀고 왔다가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스텝을 맞추며
말기 암, 엄마를 재우고 있다
죽음을 데리고 놀고 있다
죽을까 말까 죽어줄까 말까
엄마는 아빠를 놀리고 있다
아기처럼 엄마처럼
절벽 끝에서 놀고 있다
커다란 체구의 아버지가 말기 암 엄마를 재우고 있다. 휠체어를 밀며, 아마 춤추는 시늉을 하는 듯하다. 그것이 캄캄한 목숨의 낭떠러지에 희미한 웃음꽃을 피운다. 딸이 보기에 아버지는 놀고 있고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놀리고 있다. 엄마는 아기 같고 아빠는 엄마 같다. 아니, 둘 다 그냥 철부지다. 웃는 듯 우는 듯한 딸의 눈에서 절벽 끝이 한순간 지워진다.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빅 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