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줄-권자미(1967~ )
~Wonderful World
2018. 12. 5. 05:45
줄
-권자미(1967~ )
베란다 난간
응달을 타고 오른 나팔꽃이
손가락 없는
덩굴손을 허공에 얹는다.
높은 곳으로 외가닥 줄을 대는 중이다
V자 그리며 지상으로 왔으나
파리하게
입술이 타들어 오그라졌으므로
나도 그랬다
위급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아프지 않은 것만으로도 생은 득의에 찬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인간의 위급한 시간. 창졸간에 쓰러진 사람은 나팔꽃처럼 마른 손을 허공에 들고 있다. 그 손이 허공을 움켜쥘 수 있을까. 움켜쥘 수 있을 것이다. 외가닥 목숨은 단 하나의 가난한 기도다. 하나밖에 빌 줄 모르는 기도에 하나쯤의 대답은 내려올 것이다.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줄
-권자미(1967~ )

시아침 12/05
응달을 타고 오른 나팔꽃이
손가락 없는
덩굴손을 허공에 얹는다.
높은 곳으로 외가닥 줄을 대는 중이다
V자 그리며 지상으로 왔으나
파리하게
입술이 타들어 오그라졌으므로
나도 그랬다
위급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아프지 않은 것만으로도 생은 득의에 찬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인간의 위급한 시간. 창졸간에 쓰러진 사람은 나팔꽃처럼 마른 손을 허공에 들고 있다. 그 손이 허공을 움켜쥘 수 있을까. 움켜쥘 수 있을 것이다. 외가닥 목숨은 단 하나의 가난한 기도다. 하나밖에 빌 줄 모르는 기도에 하나쯤의 대답은 내려올 것이다.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