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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답이아/정약용(유배지에서 보낸편지)

~Wonderful World 2019. 2. 24. 23:01

다산 정약용선생이 유배지에서 두아이의 교육을 걱정하며 편지로 답장을 쓴 글이다. 

두아이에 대한 걱정과 사랑이 교차되는 내용이어서

약간의 한자가 있어도 읽어 내는데 불편함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강진에서 18년의 유배 생활속에 500여권의 방대한 실학관계 저작을 완성하였으며,
우리에게는 목민심서 저자로 널리 알려졌다.

  

답이아

(두아이에게 보내는 답장)

 

편지가 오니 마음에 위안이 된다.

중아(仲兒) 의 필법이 차츰 나아지고  문리(文理)도 또 나아졌다니,

나이를 먹은 덕이냐, 아니면 때때로 익혀서 그런것이냐?

 

절대로 자포자기 하지 말고 성의를 다해서 부지런히 힘써라.

책을 읽고,책을 베끼고, 글을 짓는 일에 혹시라도 방심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폐족(廢族 )으로서 글을 배우지 않고 예의가 없다면 어찌하겠느냐?

모름지기 보통 사람들보다 백 배의 공력을 더해야 겨우 사람 축에 들것이다.

 

나는 아주 고생이 많다.

그러나 너희들이 책을 읽고 몸가짐을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근심이 없어진다.

 

백아(伯兒) 는 아무쪼록 4월에 말을 사서 타고 오게 하여라

그러나 헤어질 것을 생각하면 벌써 마음이 괴롭구나 (임술년(1802)2월 초이레)

종 석(石) 이 2월 초 이렛날 돌아갔으니, 오늘쯤은 집에 도착 하였겠구나.

나는 이달에 들어서 심사가 더욱 괴롭다.

내가 너희들의 마음가짐을 보니 글 공부를 그만 두려고 하는 것 같은데,

너희들이 정말 한낱 비천한 노예가 되려고 그러느냐?

 

청족(淸族)일 때는 글 공부를 하지 않아도 혼인 할 수 있고,군역도 면 할 수 있다.

그러나 폐족이 되어서는 글 공부까지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글공부는 그래도 여사(餘事)에 속하거니와,학문을 하지 않고 예의마저 없으면 새나 짐승과 다를게 있겠느냐?

 

폐족 가운데 이따금 기이한 인재들이 많은데, 이는 다른 까닭이 아니다.

과거공부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너희들도 절대로 과거에 응시 할 수 없다 하여 스스로 좌절하지 말라.

경전(經傳) 에 힘과 마음을 써서 책 읽는 마음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를

간절히 빈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지난해 10월 초 하룻날 입은 옷이다.

그러니 어찌 견딜 수 있겠느냐? (2월17일)

 

내가 예서(禮書)를 공부하는 동안, 아무리 곤욕스럽고 괴로운 가운데 있더라도 하루도 그만둔 적이 없었다.

 

의리(義理)가 정미한 것은 마치 파의 껍질을 벗기는 것과 같다.

네가 왔을 때에 내게 말해 주었던 내용은 태반이 거친 껍질로서,

거의 근본을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해와 비교하면 거의 본 궤도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진(秦)나라나  한(漢)나라로부터 수 천년 뒤에,

그것도 요동만(遼東灣)의 동쪽 수천 리 밖에서 수사(洙泗)의 옛 예법을 안다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예서가 이뤄지는 대로 네게 보내어 다시 한 책을 베끼게 시키려고 했지만 아직 뜻대로 되지 않았다.

 

명언(名言) 과 지의(至義)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입을 열 수 없는 게 한 스러우니,이를 또한 어쩌겠느냐?

 

마융(馬瀜) 과 정현(鄭玄)이 비록 유자(儒者)라고는 하지만, 당세에 권력이 막중 하였다.

외당(外當) 에서는 제자들과 더불어 학문을 강론하면서 ,

내당(內當) 에서는 음악과 기생을 두어 즐겼다.

이처럼 화려하고 사치스러웠으니,

경전 연구도 당연히 정밀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 뒤에 공안국(孔安國) 과 가규(賈逵)등 여러 사람도 모두 유학에 통달한 자들이었지만,

심기(心氣) 가 정밀하지 못했으므로 의논한 바가 대부분 밝지 못했다.

 

그래서 곤궁한 뒤에야 비로서 책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우 총명한 선비가 아주 곤궁한 지경을 만나서,

사람들과 수레의 시끄러운 소리가 없는 곳에 하루 종일 외로이 있게 된

뒤에라야 경례(經禮) 의 정미한 뜻을 비로소 터득할 수가 있다.

 

천하에 이처럼 공교로운 일이 있겠느냐?

 

옛 경전을 고찰하여 정현과 가규의 학설을 비교해 보니,

조목조목이 거의 잘못 되었다.

 

독서는 이처럼 어려운 것이다.

 

책을 가려 뽑는 방법은 나의 학문에 먼저 주관이 서야 한다.

그런 뒤에 라야 옳고 그름을 판단 할 수 있는 저울이

마음속에 생겨서 ,

여러 내용들을 어렵지 않게 취하고 버릴 수가 있다.

지난번에 학문하는 요령을 말해 주었는데,네가 분명히 잊어버린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초서하는 법을 의심하여 이런 질문을 했겠느냐?

 

언제나 책을 읽으면서 학문에 보탬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뽑아 모으고, 그렇지 않은 것에는 눈을 붙이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비록 책이 백 권 이나 있다 하더라도 열흘 공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고려사] 에 대한 공부는 아직도 손대지 않았느냐?

젊은 사람에게 먼 생각과 통달한 견해가 없으니,탄식할 노릇이다.

네 편지 가운데 의심나거나 모르는 부분을 질문 할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였었지.

 

정말 네 마음에 참으로 의심 나서 견 딜 수 없고

생각나서 참을 수 없다면,

어찌 조목조목 기록해서 인편에 보내오지 않느냐?

아비와 자식사이에 스승가 제자가 되는 것도 또한 즐겁지 않겠는냐?

(마지막 편지 줄임)

 

 

 폐족: 정치적으로 몰락한 가문.

 마융: 중국 후한때의 훈고학의 대가이며 경전 주석자.

 정현: 중국 후한때의 훈고학의 대가이며 경전 주석자

 공안국: 중국 한나라때의 학자로 공자의 11대손.

공자가 살던 집의 벽에서  나온 과두문자로 쓰인 고문경서를 금문으로

번역하여 이로부터 고문학이 시작되었다.

 가규 : 중국 후한때의 유학자.

출처 : 다독다독
글쓴이 : 소홍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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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도 없이 퍼왔습니다.

제가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스스로 투정을 부린

제가 부끄럽게 만드네요.

청빈하고 곤궁한 일상에서 진정한 깨달음이 찾아오는 법인데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시간들이 너무나 너무나 많았음을

뒤늦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