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시들...
대리의 유목(遊牧)-정와연(1947~)
~Wonderful World
2019. 3. 14. 00:20
대리의 유목(遊牧)-정와연(1947~)
야크는 어디에 있나
강남 한복판 불빛의 고지에서 천막을 친다
이 막막한 소음 속에서 전화를 기다리며 길을 찾고 있는 사람들
오늘 밤 노선은 또 얼마나 좁고 높을 것인지
몇 십 갈래의 길들을 돌아서
아침의 현관으로 돌아 갈 것인지
몇 번의 경적으로 길을 열고 취한 길들을 몰고
찌든 냄새를 풍기는 안장을 깨울 것인지
어둠의 고원을 뚫고 후미진 길이
휴대폰을 타고 도착한다
혀끝에 말린 구어체는 주소지가 불분명하다
오지의 경비실은 어디인가
비틀거린 골목,
졸음의 꼬리를 밟고나와 취한 가장을 데려가는 이들도 있지만
내용물이 터지고 횡설수설 악취가 날 때면
잘못 배달된 짐짝처럼
반품소동이 한 참을 서성거리기도 한다
헝클어진 영혼을 문밖에 떨궈놓고 돌아서서 또 다른 야크를 부르는 사람들
예정되지 않은 남의 길
편도도 없는 길을 어둠을 찢고 달린다
짜디짠 노동덩어리와 물물교환을 하기위해 인고의 잔등을 넘는다
운송장 같은 메타기에 찍힌 숫자는
소금과 맞바꿀 생필품
밤새 얽혀 뭉쳐진 길들이 새벽녘에서야 풀려나가고
구겨 넣었던 졸음과 노곤함이 말의 잔등에서 흔들린다
언제 왔는지 야크는 빈주먹을 핥고 있다
<시집 '네팔상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