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저녁의 감정-김행숙(1970~)
~Wonderful World
2019. 3. 31. 10:01
저녁의 감정
-김행숙(1970~)
가장 낮은 몸을 만드는 것이다
으르렁거리는 개 앞에 엎드려 착하지, 착하지, 하고 읊조리는 것이다
가장 낮은 계급을 만드는 것이다, 이제 일어서려는데 피가 부족해서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현기증이 감정처럼 울렁여서 흐느낌이 되는 것이다, 파도는 어떻게 돌아오는가
사람은 사라지고 검은 튜브만 돌아온 모래사장에
점점 흘려 쓰는 필기체처럼, 몸을 눕히면 서서히 등이 축축해지는 것이다
눈을 감지 않으면 공중에서 굉음을 내는 것이 오늘의 첫 번째 별인 듯이 짐작되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이제 눈을 감았다고 다독이는 것이다
그리고 2절과 같이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릴 엄두가 나지 않는 어떤 현실은 이렇게 낯선 풍경이 된다. 이 해변에 일어설 수 있는 ‘몸’은 없고 떵떵거리는 ‘계급’ 또한 없다. 엎드려 신음하고 누워 흐느끼는 인간의 몸부림이 희미하게 얼비칠 뿐이다. 문장들의 주어는 생략돼 있다. 그것은 모두의 허물어진 마음을 알려준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 이들이 있는 여기, 꼭 되돌아와야 할 이들이 있다.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저녁의 감정
-김행숙(1970~)

으르렁거리는 개 앞에 엎드려 착하지, 착하지, 하고 읊조리는 것이다
가장 낮은 계급을 만드는 것이다, 이제 일어서려는데 피가 부족해서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현기증이 감정처럼 울렁여서 흐느낌이 되는 것이다, 파도는 어떻게 돌아오는가
사람은 사라지고 검은 튜브만 돌아온 모래사장에
점점 흘려 쓰는 필기체처럼, 몸을 눕히면 서서히 등이 축축해지는 것이다
눈을 감지 않으면 공중에서 굉음을 내는 것이 오늘의 첫 번째 별인 듯이 짐작되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이제 눈을 감았다고 다독이는 것이다
그리고 2절과 같이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릴 엄두가 나지 않는 어떤 현실은 이렇게 낯선 풍경이 된다. 이 해변에 일어설 수 있는 ‘몸’은 없고 떵떵거리는 ‘계급’ 또한 없다. 엎드려 신음하고 누워 흐느끼는 인간의 몸부림이 희미하게 얼비칠 뿐이다. 문장들의 주어는 생략돼 있다. 그것은 모두의 허물어진 마음을 알려준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 이들이 있는 여기, 꼭 되돌아와야 할 이들이 있다.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저녁의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