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강이 풀리면-김동환(1901~?)

~Wonderful World 2019. 4. 10. 10:18
강이 풀리면
-김동환(1901~?)
 
강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
배가 오면은 임도 탔겠지
 
임은 안 타도 편지야 탔겠지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임이 오시면 이 설움도 풀리지
동지 섣달에 얼었던 강물도
 
제멋에 녹는데 왜 아니 풀릴까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겨울 다해 강이 풀렸으니 배는 오리라. 배가 와야 님이 오시겠고, 하다못해 기별이라도 오리라. 강가의 저 긴긴 기다림은 놓을 수 없는 생의 이유일 터. 이 시는 ‘몸은 흘러도/넋이야 가겠지’ ‘강물만 우더냐/장부도 따라 운다’고 남성의 목소리가 울리는, 같은 시인의 ‘송화강 뱃노래’를 곁들일 때 맛이 더하다. 김동환은 서사시 ‘국경의 밤’의 시인이자 기구한 가족사를 가졌던 함경도 경성 사람. 그의 1920년대 민요시편들은 안서, 소월에 비해 서민적이고 생활에 뿌리를 둔 건강함이 있었다. 해방 후 “사람에게는 부끄러워도 하늘에 부끄러울 수는 없다”고 반민특위에 자수했으며, 52년 납북 이후 생몰 미상. 적잖은 한국 가곡의 명편들이 그의 시를 노랫말로 삼고 있다. ‘임이 오시면 이 설움도 풀리’리라. 임 또한 그러시리라.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강이 풀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