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질문의 책-3-파블로 네루다(1904~73)
~Wonderful World
2019. 4. 10. 10:28
질문의 책-3
-파블로 네루다(1904~73)
말해다오, 장미는 알몸인 건지
아니면 그게 하나뿐인 옷인 건지?
나무들은 왜 그 장엄한 뿌리를
감추고 있을까?
죄지은 자동차의 회한은
누가 들어줄까?
빗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기차보다
더 슬픈 게 세상에 있을까?
뿌리의 장엄한 세계를 동시에 보는 눈, 비를 맞고 서 있는 기차의 슬픔을 알아보는 감각, 동서를 막론하고 시인의 일이란 그 부근에 있을 것이다. 네루다는 로르카의 죽음과 스페인 내전이 자신의 시를 현실과 역사에 눈뜨게 했다고 쓴 바 있다. 그리고 피노체트 쿠데타와 아옌데, 빅토르 하라의 죽음 며칠 뒤 그도 죽었다. 천진무구의 동요이자 선가의 공안이라 해도 좋을 이 짧은 물음의 시 74편이 유고로 남겨졌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로르카가 '철학보다 죽음에 더 가깝고, 잉크보다 피에 더 가까운' 신비한 목소리라고 극찬했던 네루다의 문학은 남미 현대사의 빈곤과 고난 속에서 솟아난 깊고 뜨거운 꽃이다. 시인 이육사와 동갑이었다는 것도 참고함 직하다. 사나운 시대의 가혹한 짐을 져야 했던 이들이다.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질문의 책-3
-파블로 네루다(1904~73)

말해다오, 장미는 알몸인 건지
아니면 그게 하나뿐인 옷인 건지?
나무들은 왜 그 장엄한 뿌리를
감추고 있을까?
죄지은 자동차의 회한은
누가 들어줄까?
빗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기차보다
더 슬픈 게 세상에 있을까?
뿌리의 장엄한 세계를 동시에 보는 눈, 비를 맞고 서 있는 기차의 슬픔을 알아보는 감각, 동서를 막론하고 시인의 일이란 그 부근에 있을 것이다. 네루다는 로르카의 죽음과 스페인 내전이 자신의 시를 현실과 역사에 눈뜨게 했다고 쓴 바 있다. 그리고 피노체트 쿠데타와 아옌데, 빅토르 하라의 죽음 며칠 뒤 그도 죽었다. 천진무구의 동요이자 선가의 공안이라 해도 좋을 이 짧은 물음의 시 74편이 유고로 남겨졌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로르카가 '철학보다 죽음에 더 가깝고, 잉크보다 피에 더 가까운' 신비한 목소리라고 극찬했던 네루다의 문학은 남미 현대사의 빈곤과 고난 속에서 솟아난 깊고 뜨거운 꽃이다. 시인 이육사와 동갑이었다는 것도 참고함 직하다. 사나운 시대의 가혹한 짐을 져야 했던 이들이다.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질문의 책-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