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시들

창호지 - 최태랑

~Wonderful World 2019. 10. 15. 04:10

창호지

 

최태랑




문살에 그리움 한 잎 피었다


입동이 가까우면

낡은 창호지를 뜯어내던 외할머니

세상 때를 벗겨내고

단풍잎으로 새 무늬를 넣었다


혼자 놀기를 좋아하여

그늘만 찾던 어린 굴뚝새는

안팎을 가르는 한 장 얇은 창지에

떠나는 어미를 지켜보던

어린 까치발을 묻었다


눈물을 받아먹던

빈 창은 언제나 공복이었다

환한 창문에 손 구멍이 났다

그곳으로 눈이 드나들었다


기다림도 나이가 들어

가만히 귀 기울여 보니

문살 틈에 낀 울음

바람 불 때마다 흐느끼고 있었다


『도시로 간 낙타』P.94-95


최태랑

목포 출생. 『시와 정신』으로 등단.  시집『물은 소리로 길을 낸다』, 『도시로 간 낙타』. 산문집『내게 묻는 안부』출간

-다음 친구 블로그<별똥별이야기>에서 퍼나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