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글들
가시없는 사랑-반숙자
~Wonderful World
2019. 10. 24. 09:58
가시 없는 사랑
반숙자
우리 집 베란다에는 화초들이 있습니다. 양지바른 자리여서 분갈이를 해마다 하지 않아도 잘 자랍니다. 베란다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평화롭습니다. 식물들은 침묵 속에서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뿜으며 여여하게 자랍니다. 저마다 개성이 있어서 한자리에 모아놓아도 저저끔 제 꽃을 피우는 것이 경이롭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채운각이라는 선인장을 아낍니다. 십여 년을 길렀더니 주인의 정성이 느껴졌는지 가지가 죽죽 뻗어 나가며 내 키를 넘어섰습니다. 가장자리에 자잘한 잎과 가시가 있어서 조화의 미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선인장은 가시 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 채운각 앞에 서면 어떤 식물학자가 생각납니다.
그는 환경이 열악산 사막에 사는 선인장들이 사나운 가시를 지니고 있음을 생각했습니다. 왜 가시로 온몸을 중무장했을까? 그날부터 선인장 한 그루를 화분에 담아가 연구실에 두고 날마다 바라보다가 선인장은 누구를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가시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선인장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내가 너를 지켜주겠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식물학자는 놀랐습니다. 어느 날 선인장의 가시가 하나둘 빠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식물에게도 마음과 영혼이 있어 간절한 마음에 반응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가시 없는 선인장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나는 짬만 나면 식물학자 흉내를 내서 무서워 말라고, 내가 너를 지켜준다고 일러주었습니다.
며칠 전 외출에서 돌아오니 베란다가 휑합니다. 왜 그런가 살피다가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화초 중 가장 빼어났던 채운각이 동강동강 잘려서 바닥에 수북하게 쌓여있지 않은가요. 기가 찰 일입니다. 소파에 앉아서 신문을 보는 남편에게 누가 그랬냐고 가시 돋친 말을 쏘아댔습니다. 저의 기세에 놀랐던지 남편은 엉거주춤 일어서더니 두 손을 비비며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하는데 그 모습이 겁먹은 아이 같았습니다.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다가가서 두 팔로 꼭 품고 '괜찮아요'를 되뇌었습니다.
자존감이 높아서 한 생을 휘젓고 산 남자, 큰소리 땅땅 치며 제왕처럼 살던 남자는 어디로 가고 병들고 나약한 노인이 내 앞에 있는 것입니다. 어제와 오늘을 분간 못하고 먹은 건지 배고픈 건지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요. 저녁 내 선인장을 쓸어다 버리고 왜 그랬냐고 넌지시 떠보았습니다. 남편은 선인장이 자기를 찔러서 미웠다고 했습니다. 선인장도 무서워 가시를 지녔는데 그 가시가 무서워 폭력을 휘두른 노인은 어쩌면 더 나약한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에게 소리를 지른 내가 미워서 남편에게 내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청합니다.
수많은 가시들 속에서 가시를 가시로만 본 우둔함이 부끄러워, 듣는 마음과 분별력의 지혜를 청해봅니다.
친구블로그 별똥별이야기에서 퍼나름
반숙자
우리 집 베란다에는 화초들이 있습니다. 양지바른 자리여서 분갈이를 해마다 하지 않아도 잘 자랍니다. 베란다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평화롭습니다. 식물들은 침묵 속에서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뿜으며 여여하게 자랍니다. 저마다 개성이 있어서 한자리에 모아놓아도 저저끔 제 꽃을 피우는 것이 경이롭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채운각이라는 선인장을 아낍니다. 십여 년을 길렀더니 주인의 정성이 느껴졌는지 가지가 죽죽 뻗어 나가며 내 키를 넘어섰습니다. 가장자리에 자잘한 잎과 가시가 있어서 조화의 미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선인장은 가시 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 채운각 앞에 서면 어떤 식물학자가 생각납니다.
그는 환경이 열악산 사막에 사는 선인장들이 사나운 가시를 지니고 있음을 생각했습니다. 왜 가시로 온몸을 중무장했을까? 그날부터 선인장 한 그루를 화분에 담아가 연구실에 두고 날마다 바라보다가 선인장은 누구를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가시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선인장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내가 너를 지켜주겠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식물학자는 놀랐습니다. 어느 날 선인장의 가시가 하나둘 빠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식물에게도 마음과 영혼이 있어 간절한 마음에 반응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가시 없는 선인장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나는 짬만 나면 식물학자 흉내를 내서 무서워 말라고, 내가 너를 지켜준다고 일러주었습니다.
며칠 전 외출에서 돌아오니 베란다가 휑합니다. 왜 그런가 살피다가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화초 중 가장 빼어났던 채운각이 동강동강 잘려서 바닥에 수북하게 쌓여있지 않은가요. 기가 찰 일입니다. 소파에 앉아서 신문을 보는 남편에게 누가 그랬냐고 가시 돋친 말을 쏘아댔습니다. 저의 기세에 놀랐던지 남편은 엉거주춤 일어서더니 두 손을 비비며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하는데 그 모습이 겁먹은 아이 같았습니다.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다가가서 두 팔로 꼭 품고 '괜찮아요'를 되뇌었습니다.
자존감이 높아서 한 생을 휘젓고 산 남자, 큰소리 땅땅 치며 제왕처럼 살던 남자는 어디로 가고 병들고 나약한 노인이 내 앞에 있는 것입니다. 어제와 오늘을 분간 못하고 먹은 건지 배고픈 건지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요. 저녁 내 선인장을 쓸어다 버리고 왜 그랬냐고 넌지시 떠보았습니다. 남편은 선인장이 자기를 찔러서 미웠다고 했습니다. 선인장도 무서워 가시를 지녔는데 그 가시가 무서워 폭력을 휘두른 노인은 어쩌면 더 나약한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에게 소리를 지른 내가 미워서 남편에게 내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청합니다.
수많은 가시들 속에서 가시를 가시로만 본 우둔함이 부끄러워, 듣는 마음과 분별력의 지혜를 청해봅니다.
친구블로그 별똥별이야기에서 퍼나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