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시들

수종사 뒤꼍에서 - 공광규

~Wonderful World 2019. 10. 27. 09:07
수종사 뒤꼍에서 - 공굉규




신갈나무 그늘 아래서 생강나무와 단풍나무 사이로

멀리에서 오는 작은 강물과 작은 강물이 만나

같이 흘러가는 큰 강물을 바라보았어요.

서로 알 수 없는 곳에서 와서 몸을 합쳐

알 수 없는 곳으로 멈춘 듯 흘러가는 강물에

지나온 삶을 풀어놓다가 그만 뚝!

나뭇잎에 눈물을 떨어뜨리고 말았지요.

눈물에 젖어 반짝이는 나뭇잎이 가슴을 일깨웠어요.

눈물을 사랑해야지 눈물을 사랑해야지 다짐하다가

뒤꼍을 내려오려고 뒤돌아보는데 나무 밑동에

누군가 단정히 기대어놓고 간 시든 꽃다발

우리는 수목장한 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던 거지요.

먼 후일 우리도 이곳에 와 나무가 되어요.

그늘을 만들어 누구라도 강물을 바라보게 해요.

매일 매일 강에 내리는 노을을 바라보고

해마다 푸른 잎이 붉은 잎으로 지는 그늘이 되어

한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 삶을 바라보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