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의 식사 - 이선식
바짝바짝 마르고 목이 타들어가는 바위에게도 물을 주고
나도 이렇게 애착이 가고 사랑하는 것들이 있다고 흡족해하며 평상에 앉아있다
바위 위 우묵한 데 고인 물을 들여다본다
파란 하늘이 비치고 나뭇가지가 들어왔다
바위도 흡족해하는 표정일까
주름치마처럼 커튼처럼 오물거리는 이 없는 입처럼
고인 물이 물의 표면이 흔들렸다
내려쬐는 햇볕에 자작자작 물이 마르고
무슨 그리운 것이 있나 반나절째 나는 물의 표면을 바라보고 있다
바위는 자신의 견고한 생각으로 파란 하늘과
이파리 무성한 나뭇가지를 세밀하게 궁구하는 중인지
지그시 눈을 감고 오물오물 오물오물
이윽고 하늘도 나뭇가지도 바위 속으로 다 들어갔다
한나절을 다 채우고
바위의 긴 식사가 끝났다
----------------------------------------------------------------------------
더위가 절정에 이른 날, 화자는 잔디밭에 넉넉히 물을 주며 바위도 빠트리지 않는다. 이것이 사랑하고 애착이 가는 것들을 대하는 시인의 흡족한 마음이다. 그리고 평상에 앉아 바위 표면 우묵한 데 고인 물을 바라보며 문득 하나의 세계를 발견한다. 넉넉한 물 주기가 빚어낸 파란 하늘과 나뭇가지가 들어 있는 세계. 이 소우주는 정지한 세계가 아니라 햇볕에 자작자작 물이 마르고 그것을 품은 바위가 푸른 하늘과 무성한 나뭇가지를 세밀하게 궁구하는 것인지 “지그시 눈을 감고 오물오물 오물오물”하는 정중동의 공간이다. 그렇게 한나절이 지나고 물도 하늘도 나뭇가지도 다 바위 속으로 들어가는 바위의 긴 식사가 끝난다. 자연과 자연의 합일, 시인에게 세계와 세계의 합일은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자 - 이정록(1964~ ) (0) | 2013.03.22 |
---|---|
산숙(山宿) - 백석(1912~95) (0) | 2013.01.24 |
웃은 죄-김동환 (0) | 2013.01.17 |
와운산방(臥雲山房) -장석남(1964~ ) (0) | 2013.01.16 |
낯선 곳-고은(1933~) (0) | 2013.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