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생활-조용우(1993~) 새로운 생활 문병을 다녀오는 길에 새 옷을 사기로 한다 벽장 속 셔츠들은 옷깃이 바랬고 오늘은 사야한다 새로운 흰 것을 여름의 아웃렛 비어있는 리넨들은 간소하고 청결한 라이프 스타일을 권하고 너는 이제 그런 생활을 한다 얇은 옷 한 벌과 주머니 두 개로 마당 없는 병원 벤치에 간..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2019.10.02
뒤에 서는 아이- 이태진(1972~) 뒤에 서는 아이 - 이태진(1972~) 줄을 서면 늘 뒤에 서는 아이가 있었다 앞에 서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아서인지 뒤에만 서는 아이는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뒤에 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고 난 후에도 늘 뒤에 있는 것이 편안해 보였다 주위의 시선과 관심..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2019.04.11
슬픔의 진화- 심보선(1970~ ) 슬픔의 진화 - 심보선(1970~ ) 내 언어에는 세계가 빠져 있다 그것을 나는 어젯밤 깨달았다 내 방에는 조용한 책상이 장기 투숙하고 있다 세계여! 영원한 악천후여! 나에게 벼락 같은 모서리를 선사해다오! 설탕이 없었다면 개미는 좀더 커다란 것으로 진화했겠지 이것이 내가 밤새 고민 끝..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2019.04.11
약속- 천상병(1930~93) 약속 - 천상병(1930~93) 한 그루의 나무도 없이 서러운 길 위에서 무엇으로 내가 서 있는가 새로운 길도 아닌 먼 길 이 길은 가도가도 황토(黃土)길인데 노을과 같이 내일과 같이 필연코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 천상병 시인이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떠난 지도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2019.04.11
노마드- 유경희(1964~ ) 노마드 - 유경희(1964~ ) 초지를 찾을 수 없어서 집을 짓기 시작했지 바닥을 놓으니 땅의 노래를 들을 수 없었다 기둥을 세우니 풍경이 상처를 입는다 지붕을 만드니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낮에는 갈 곳이 없었고 밤에는 무엇엔가 쫓겼어 내가 지상에서 바라는 것 하나 우루무치행 ..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2019.04.11
아이들- 심언주(1962~ ) 아이들 - 심언주(1962~ ) 뭉텅뭉텅 쏟아 놓은 아이들 아침마다 피는 아카시아 꽃 앞산, 뒷산 정강이에 발등에 아무렇게나 흘러내린 토끼풀 꽃, 찔레꽃 얼굴이 하얀 아이들 바람만 불어도 까르르 까르르 들길을 흔들며 숲길을 흔들며 햇빛 공화국으로 햇빛 네트워크로 꽃들이 세상을 덮을 때,..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2019.04.11
참회록- 윤동주(1917~45) 참회록 - 윤동주(1917~45)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ㅡ만 24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2019.04.10
소곡(小曲) -박재삼(1933~97) 소곡(小曲) -박재삼(1933~97) 먼 나라로 갈까나. 가서는 허기져 콧노래나 부를까나. 이왕 억울한 판에는 아무래도 우리 나라보다 더 서러운 일을 뼈에 차도록 당하고 살까나. 고향의 뒷골목 돌담 사이 풀잎 모양 할 수 없이 솟아서는 남의 손에 뽑힐 듯이 뽑힐 듯이 나는 살까나. 마음의 물꼬..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2019.04.10
질문의 책-3-파블로 네루다(1904~73) 질문의 책-3 -파블로 네루다(1904~73) 말해다오, 장미는 알몸인 건지 아니면 그게 하나뿐인 옷인 건지? 나무들은 왜 그 장엄한 뿌리를 감추고 있을까? 죄지은 자동차의 회한은 누가 들어줄까? 빗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기차보다 더 슬픈 게 세상에 있을까? 뿌리의 장엄한 세계를 동시에 보는 ..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2019.04.10
풀잎 -박성룡(1930~2002) 풀잎 -박성룡(1930~2002)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잎 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바람이 부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몸을 흔들까요. 소나기가 오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또 몸을 통통거릴까요. 그러나 풀잎은 퍽..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2019.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