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 살구 개살구 - 하순희(1953~ )

길을 가다 문득
살아온 날 돌아보니
그리워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구나
적요로 시린 앞섶은
때깔 좋아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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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앞만 보지요. 빨리 자라서 어른이 되고 싶지요. 그렇게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어서도 앞만 보지요.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더 큰 성공을 하고 싶지요. 그렇게 하고 싶었던 성공을 해서도 앞만 보지요. 누구에게도 그 자리를 빼앗기고 싶지 않지요. 그렇게 먼 길을 앞만 보고 달리지요. 그러다 이 시처럼 ‘문득 살아온 날 돌아보’는 날이 오지요. 누구에게나 그런 날은 오지요. 그런데 어쩌나요. ‘그리워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덜컥 알아버릴 텐데요. 자신의 ‘앞섶’이 ‘때깔 좋아 환하’긴 하지만 그것이 빛 좋은 개살구라는 걸 알아버릴 텐데요. <강현덕·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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