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시들...

함몰하는 저녁에-신현림(1961~)

~Wonderful World 2014. 7. 8. 01:26

함몰하는 저녁에-신현림(1961~)

 

 

 

갑자기 우리는 미친 듯이

어설프게,부끄럼도 없이

고민에 빠져서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보고프의 이 말을 나는 좋아한다

패션처럼 흔들려도 너를 좋아한다

피묻은 가운을 걸친 채

작업장에서 돌아와 너는 나를 원한다

날아가버린 새들을 부르면서

저녁 창가에서

그래, 서로에게 흘러가는 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인 듯이 미친 듯이

서로의 몸 속에 긴 굴을 파는 거다

 

밖은 언제나 싸늘한 수술실이다

세월의 침대 위에서

너와 나는 무용한 메스였고

세상의 침대 위에서

너와 나는 무용한 메스였고

세상의 불길한 짐인지도 모른다

너를 거절한 희망이 내 몸을 조른다

세상은 우리를 초대 안했는지도 모른다

괴롭지만 내일 또한 밖을 향해 기어가기 위하여

나의 억압 너의 제복을 찢고

저 차가운 노을 끄고

너는 온몸 밀고 달린다

눈물의 앰뷰런스가 달린다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은 밀실로

너와 내가 죽어

처참히 살아나는

쓸쓸한 묘혈 속을 달린다

 

-시집 '지루한 세상에 구두를 던져라(199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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