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몰하는 저녁에-신현림(1961~)
갑자기 우리는 미친 듯이
어설프게,부끄럼도 없이
고민에 빠져서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보고프의 이 말을 나는 좋아한다
패션처럼 흔들려도 너를 좋아한다
피묻은 가운을 걸친 채
작업장에서 돌아와 너는 나를 원한다
날아가버린 새들을 부르면서
저녁 창가에서
그래, 서로에게 흘러가는 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인 듯이 미친 듯이
서로의 몸 속에 긴 굴을 파는 거다
밖은 언제나 싸늘한 수술실이다
세월의 침대 위에서
너와 나는 무용한 메스였고
세상의 침대 위에서
너와 나는 무용한 메스였고
세상의 불길한 짐인지도 모른다
너를 거절한 희망이 내 몸을 조른다
세상은 우리를 초대 안했는지도 모른다
괴롭지만 내일 또한 밖을 향해 기어가기 위하여
나의 억압 너의 제복을 찢고
저 차가운 노을 끄고
너는 온몸 밀고 달린다
눈물의 앰뷰런스가 달린다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은 밀실로
너와 내가 죽어
처참히 살아나는
쓸쓸한 묘혈 속을 달린다
-시집 '지루한 세상에 구두를 던져라(199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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