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 최영미(1960~) ‘선운사에서’ 중에서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그만둘 때 고등학교 선배가 종이에 적어 보내준 시다. 이 시를 읽고 나는 단칼에 자리를 정리하고 떠났다. 쉰이 넘도록 청춘을 바치고 열정을 불태우면서 혼신을 다했던 시민운동가의 길을 접고 다시 새로운 길 위에 섰을 때, 흔들렸다. 백두대간을 걷고 또 걸으면서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아주 잠깐이더군” 구절을 읊조리고 또 읊조렸다.
검사·인권변호사·시민운동가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갈 때마다 나는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순간이라는 마음으로 일했다. 작은 국회라고 불리며 시민권익 옹호와 입법 활동에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낸 참여연대, 우리 사회에 처음으로 나눔과 기부의 문화를 선보인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 더 나은 사회를 꿈꾸며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정책들을 만들어낸 희망제작소…. 이 단체들을 설립하고 운영하면서 성과를 이뤄내고 자리가 잡힐 때까지 온 마음과 힘을 쏟아부으며 일했다. 그리고 스스로 떠나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을 때, 미련 없이 떠났다. 꽃이 진 자리에서 새로운 꽃은 또 피어난다. 창조란 그런 것이다.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꽃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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