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시인 온다
-김규동(1925~2011)
철없는 모더니스트 시절
명동에서
내 친구들이
새까만 얼굴의
천상병이 나타나면
야, 저기 거지 시인 하나 온다라고
우스갯소리 했지요
상대 나왔다는 친구가
뭐 저러냐
너 또 200원 줘라
그렇잖아도 너 알아보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빈정댔지요
(...)
그때 천상병이를 거지 시인이라 놀려주던
친구들은 다 시인이 못 되고
천상병이는 시인으로 남게 되었군요
영원히
공수래공수거란 말은 거지로 와서 거지로 살다 거지로 떠난다는 말도 된다. 그런데 빈손과 빈손 사이, 삶은 뭘 움켜쥐려는 다툼 투성이다. 시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데서 예외는 놀림감이 된다. 가질 줄 모르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예외를 품을 줄 알던 다른 시인이 이렇게 시에 적었다. 거지 시인을 놀리던 이들은 시인이 못 되었다. 제 본모습을 두고 손가락질했던 탓이 아닐까.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거지 시인 온다
-김규동(1925~2011)

시아침 10/22
명동에서
내 친구들이
새까만 얼굴의
천상병이 나타나면
야, 저기 거지 시인 하나 온다라고
우스갯소리 했지요
상대 나왔다는 친구가
뭐 저러냐
너 또 200원 줘라
그렇잖아도 너 알아보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빈정댔지요
(...)
그때 천상병이를 거지 시인이라 놀려주던
친구들은 다 시인이 못 되고
천상병이는 시인으로 남게 되었군요
영원히
공수래공수거란 말은 거지로 와서 거지로 살다 거지로 떠난다는 말도 된다. 그런데 빈손과 빈손 사이, 삶은 뭘 움켜쥐려는 다툼 투성이다. 시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데서 예외는 놀림감이 된다. 가질 줄 모르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예외를 품을 줄 알던 다른 시인이 이렇게 시에 적었다. 거지 시인을 놀리던 이들은 시인이 못 되었다. 제 본모습을 두고 손가락질했던 탓이 아닐까.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거지 시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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