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과(裂果)-안희연(1986~)
이제는 여름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흘러간 것과 보낸 것은 다르지만
지킬 것이 많은 자만이 문지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지기는 잘 잃어버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 다 훔쳐가도 좋아
문을 조금 열어두고 살피는 습관
왜 어떤 시간은 돌이 되어 가라앉고 어떤 시간은
폭풍우가 되어 휘몰아치는지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솔직해져야 한다
한쪽 주머니엔 작열하는 태양을 , 한쪽 주머니엔 장마를 담고 걸었다
뜨거워서 머뭇거리는 걸음과
차가워서 멈춰 서는 걸음을 구분하는 일
자고 일어나면 어김없이
열매들은 터지고 갈라져 있다
여름이 내 머리 위에 깨뜨린 계란 같았다
더럽혀진 바닥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여름은 다시 쓰일 수 있다
그래, 더 망가져도 좋다고
나의 과수원
슬픔을 세는 단위를 그루라 부르기로 한다
눈 앞에 너무 많은 나무가 있으니 영원에 가까운 헤아림이 가능하겠다
<창작과 비평 2018 겨울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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