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의 무덤
-유병록(1982~)
-유병록(1982~)

이름이 있다
다른 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숨겨둔, 아무도 없는 밤에 아껴서 발음하는
병약한 아기의 부모가 누구도 외우지 못할 만큼 길게 지은, 그러나 결국 악령에게 들켜버린 이름처럼
부르지 않으려 기억하는 이름이 있다
여러 번 개명하지만 곧 들키고 마는
입속에 묻힌 이름이 있다
긴 이름을 가진 아이 이야기에는 장수(長壽)의 기원이 단명(短命)의 슬픔에 처한다는 판본이 있다. 긴 이름이 외려 아이를 불행에 빠뜨리는 것이다. 길건 짧건 이름으로만 남은 이름은 아프고 두려운 것이리라. 그래서 부르지 못할 기호이리라. 그러나 어느 깊은 밤에, 가슴에 묻고 머리로 잊으려 했던 그 이름이 사랑스러운 발음이 되어 입속에 고인다면? 부르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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