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글들

페가수스의 꿈 - 한영탁

~Wonderful World 2020. 9. 11. 06:04

페가수스의 꿈

한영탁

이른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눈을 부비면서도 먼저 조간신문부터 찾아 든다. 신문기자로 서른 해 넘게 일하고 퇴직한 지 십 년이 넘었지만 기자 시절의 타성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평생 기자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다. 좀 더 잘 했더라면 하는 뉘우침과 아쉬움은 많다. 하지만 저널리스트를 생업으로 삼은 데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다. 자유로운 사고와 비판 정신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 더 큰 보상으로 여기며 살아왔으니까. 격동하는 세기 말 한 시대의 증언자가 되었다는 뿌듯한 자부심도 가질 수 있었지만, 기자라는 직업이 천형天刑처럼 괴롭고 아팠던 적도 없지 않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나를 이런 천직과 천형의 길로 데려다 준 것은 손바닥만 한 한 권의 월간 잡지였다.

6.25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중학생 때였다. 나는 우리 집에서 반 마장쯤 떨어진 면소재지의 5일 장마당에서 작은 잡지 한 권을 발견했다. 군용 트럭들이 마구 먼지를 날리며 지나가는 시골 장터 한 구석에 돛베 같은 걸 깔고 그 위에다 『유충렬전』, 『장화홍련전』 따위 옛이야기책과 학습참고서 같은 책들을 늘어놓은 노점 책가게에서, 『리더스 다이제스트』 란 잡지를 만났던 것이다. 영문판 잡지를 한글로 번역한 책이었다.

이 잡지의 발견은 나에게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도 맞먹는 기적, 그것이었다. 우리말을 찾은 지 얼마 안 되어서 터진 전쟁 통에, 읽을 거리에 목말라하던 이 잡지에는 나라밖 정세, 새로운 과학 기술, 건강과 의학, 훈훈한 이야기 등 온갖 유익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래서 이 잡지가 폐간되기까지 거의 두 해 반 동안 그야말로 애독, 열독했다. 미국에서 영어로 발행되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는 수많은 잡지와 전문 저널 등 정기간행물과 전기傳記 및 서적에 실린 긴 내용의 글을 한 기사가 서넛 쪽을 넘지 않게 알기 쉬운 말로 요약해 실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때 나오던 우리말판版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 본사의 저작권 출판 계약도 없이 번역해내는, 말하자면 해적판이었다는 건 훨씬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잡지는 전란 중에 시골 중학교에 다니던 나에게는 더 넓은 세계를 내다보는 창窓이자 휴머니즘에 충만한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잡지가 나의 인생을 지배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매월 베스트 셀러를 한 권씩 좀 길게 발췌하여 권말부록으로 싣고 있었는데 나는 어느 날 장터에서 사 든 한 권의 부록란에서 어떤 미국인 종군 기자의 일대기를 읽게 되었다.

베스트 셀러 요약물로 실린 그의 전기는 히틀러의 유럽 정복 야욕으로 발발된 제2차 세계대전에 개입하기를 꺼려 하는, 미국의 여론을 움직여서 참전 쪽으로 기울게 하는 데 한몫을 한 기자의 스토리였다. 나치의 폴란드 침공으로 서막이 오른 전쟁은 프랑스와 영국의 참전을 불러오면서 유럽 전역을 전화로 불붙게 했다. 그러나 영국의 다급한 구조 요청에도, 대서양 건너 미국은 강 건너 불 보듯이 팔짱을 끼고 방관하기만 했다.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나치의 세계 정복 흉계를 잘 알고, 히틀러를 증오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구舊 대륙의 전쟁에 말려들기 꺼려 고립주의를 고수하려는 의회와 여론에 발목이 잡혀, 고작 무기와 식량 원조만 보내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을 뿐이었다. 식량과 무기를 싣고 영국으로 가는 미국의 수송선단이 수천 척이나 나치 U보트 잠수함의 어뢰공격을 받고 침몰해도 손 놓고 방관하기만 했다. 심지어 민간 여객선이 침몰돼도 공허한 항의만 거듭할 뿐이었다.

그 무렵 미국 ABC방송의 어니 파일 특파원은 독일 폭격기들과 V-2로케트의 폭격으로 불타고 있는 런던 거리를 마이크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나치의 비전투원 무차별 학살의 참상과 잔학한 파괴를 생생히 중계하는 전파를 미국에 날려 보냈다. 불타 넘어지는 빌딩과 방공호로 달려가는 사람들 속을 누비면서 전하는 그의 처절한 현장보도는 미국 시민들의 나치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켜서 여론이 참전 쪽으로 돌아서게 만드는 데 큰 몫을 했다. 그리하여 얼마 후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자 루즈벨트는 즉각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곧 이어 히틀러의 나치에 대해서도 선전포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어니 파일 기자의 전기를 읽고 나서 나는 전기 충격을 받은 것 같은 쩌릿한 감동에 사로잡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때 옳지 앟은 것과 결연히 맞서는 한 기자의 불같은 정의감과 용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펜과 마이크의 힘에 감격하여 은연중에 나도 커서 나중에 저널리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가꾸게 되었던 것 같다.

나의 청소년 시절 어니 파일 기자의 이야기가 실린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상징 로고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신詩神 뮤즈가 타고 다니는 날개 달린 천마天馬, 페가수스였다. 새까만 천마에 자유의 영혼을 싣고, 시심詩心을 싣고 하늘을 나는 저널리스트가 되겠다던 나의 어릴 적 꿈은 과연 얼마만큼 성취되었는가? 부끄러움 없는 저널리스트로 남으려고 참 열심히 산 세월이었다. 하지만 일흔을 넘긴 나이에 바라보는 하늘은 무언가 덜 채워진 듯 허전하기 만하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서 1953년에 걸쳐 2년 가까이 임시수도 부산에서 저작권 계약 없이 발행되던 한글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전시의 젊은 한국의 젊은이들과 학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당시 옵셋 인쇄 기술이 들어오기 전이어서 칼러판 표지는 일본에서 찍어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다이제스트 본사 영업국은 무단 발행을 문제 삼아 해적판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발행인 드윗 월리스 씨는 전쟁 중인 어려운 나라를 돕는 차원에서 그냥 두라고 말렸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내가 연세대 총장을 지내신 백낙준 박사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듣게 되었다. 백낙준 박사는 한국전쟁 이전부터 월리스 씨와 매우 가까이 지낸 사이였다. 월리스 사주의 저택 응접실에는 백 박사가 선물한 청전靑田 이상범 화백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 『에세이21』 2010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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