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동백꽃이 피었다/ 한복용-친구 브로그(별똥별이야기)에서 퍼옴)

~Wonderful World 2021. 3. 17. 02:21

동백꽃이 피었다/ 한복용

 

필사/좋은 수필

2021. 3. 16.

*한국문인협회 수필교실 자료 수필 2021.03.17

 

동백꽃이 피었다

한복용

 

 

 

1.큰언니 집 발코니에 동백나무 한 그루가 있다. 작년에 거래처 농장에 갔을 때 나를 따라온 언니에게 농장 안주인이 선물한 것이다. 1미터가 채 되지 않는 동백은 그해 십여 개의 꽃봉오리를 맺었지만 두 송이만이 꽃을 피웠다. 된장 고추장 항아리와 나란히 있는 동백은 도심 아파트 발코니에서 시골의 정취를 느꼈다.

2.꽃을 좋아하는 형부는 피지도 못하고 떨어진 봉오리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작은 그릇에 모아 화분 옆에 놓았다. 관리를 잘 못해서 어린 꽃봉오리를 잃은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발코니에 내놓으라는 내 말을 무시하고 행여 나무가 추울세라 따뜻한 거실에 들여와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유 없이 봉오리 채 떨어지기에 아차 싶어 부랴부랴 밖으로 내 놓았지만 허사였다. 두 송이의 꽃을 보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못내 아쉬워하던 형부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떨어진 봉오리 자리에 어버이날 손자에게 받은 붉은 색 카네이션 조화를 매달아 놓아 웃었던 기억도 난다.

3.만개한 꽃송이들과 이제 막 벌어지려 하는 봉오리 등, 올해는 동백꽃이 풍년이다. 형부는 일일이 꽃송이를 세가며 자랑했다.

4.동백꽃을 보면 초등학교 가는 길목에 있던 먼 친척네 정원이 떠오른다. 그 집 정원에 동백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수령이 30년쯤 되었다 했다. 그곳을 지날 때면 동백나무는 윤기 흐르는 진초록 이파리를 자랑하거나 붉은 꽃송이를 툭툭 떨어뜨려 눈길을 끌었다. 눈을 감고 들으면 알밤이나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로 들렸다. 한조각 미련도 없이 멀쩡한 채로 떨어지고 마는 동백꽃의 결심이 멋져보였다.

5.동백꽃은 암술과 수술이 함께 있다. 연인사이의 영원한 결합을 상징하는 이유가 거기에서 비롯된다. 동백꽃은 모양과 색이 온전하다 하여 떨어짐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꽃받침과 더불어 과감히 몸을 던진다. 절정의 순간 망설임은 무의미하다는 뜻일 게다. 동백의 절정은 온전한 상태로 떨어지는 '그 순간'이기 때문이다. 낙화는 바로 동백꽃의 완성된 모습이리라.

 

6.오래 전 혼돈의 시기에 선운사 동백나무 길을 걸은 적이 있다. 결혼을 앞 둔 어느 날이었다. 그 사람과의 미래가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닭을 몰라 답답했다. 정신이 산만하니 판단은 더욱 흐려졌다. 이미 날은 정해졌고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부모도 형제도, 그 누구도 마음을 풀어놓을 대상이 아니었다. 잠이 오지 않아 무작정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이 선운사였다. 이른 아침 동백꽃길을 걸었다.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그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아름드리 동백나무는 나를 보며 잘 왔다는 듯 매끄러운 몸매를 뽐내었다. 나는 나무들을 쓰다듬으며 근심 없는 사람처럼 그 길을 천천히 걸었다.

7.어차피 길지 않을 인연이었다면 그날 그 길에서 명쾌하게 결단을 내렸으면 좋았을 것을. 그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 있다던가, 일에 있어서의 결정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때를 놓쳐 거치지 않아도 될 과정을 치르고 말았다. 나의 꽃길 산책은 그저 꽃길을 걷는 것으로 그쳤고 결혼 후 석 달쯤, 그때서야 풀리지 않았던 의문의 실마리가 잡혔다. 나는 그의 손을 놓았다. 그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홀연히 내 곁을 떠났다.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한다'던 그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 되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좋은 가정을 이루겠다는 나의 결심 또한 제대로 피어 보지도 못한 채 떨어졌다.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빨간 동백꽃의 꽃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8.그러고 보면 꽃말이란 것이 누구에게나 맞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 싶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며 꽃말대로 되기를 기원하지만 사람의 일은 언제나 다른 쪽도 동반하곤 한다. 다른 쪽이라 하여 꼭 나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련다. 다만, 그 꽃말의 의미가 잠시 빗나간 것뿐일 테니까.

9.동양에서는 동백꽃의 꽃잎이 정확하게 대칭과 균형을 이룬다 하여 숙녀의 정조를 뜻해왔다. 또한 꽃받침이 그녀를 보호해줄 청년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꽃이 받침과 함께 떨어지는 것을 빗대 영원한 사랑의 완성이라 말하는 이도 있었다.

10.중국에서는 처녀가 배우자감을 유혹할 때 동백꽃을 이용한다고 하지만, 남자들에게 동백꽃을 바치는 것은 사랑을 갈망할 뿐 아리라 행운을 기원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었다. 동백꽃은 언제나 행운을 전달한다는 믿음이 두터웠기 때문이다. 마음을 내보이기 전에 신중히 생각하는 사람을 동백에 비유하기도 한다. 동백꽃의 낙화가 명쾌한 것은 깊은 사려 끝에 내린 결단이기 때문이라 생각한 것일까.

11.동백꽃이 절정을 이룰 때쯤 선운사에 가봐야겠다. 그날 걸었던 동백나무 길을 다시 걷고 싶어졌다. 혼돈의 시기는 어제도 오늘도 오고 또 가겠지만 동백꽃의 결단을 보며 헝클어진 삶의 타래를 잠시 내려놓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리라. 시간은 결코 나쁜 시절만 남기는 것은 아닐 테니까.

 

꽃을 품다P.184-189

 

 


|한복용
충남 태안 출생. 2007년 격월간『에세이스트』로 등단. 2016년『인간과문학』제4회 평론 공모 당선. 저서『우리는 모두 흘러가고 있다』(2013)『지중해의 여름』(2017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꽃을 품다』(2019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출간. 한국문인협회 회원. 에세이스트작가회의 이사.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 플로리스트,
<꽃의나라> 운영.

 


자료 詩

 

냉이꽃

김수우

 

 

어떤 이들은 삶이 너무 무겁다고 고민하고, 어떤 이들은 가볍다고 서러워한다. 같은 분량의 햇살이나 빗방울이 한 사람에게는 코끼리처럼 힘들고, 다른 이에게는 홀씨처럼 가볍다. 무겁거나 가볍거나 무게를 느끼는 건 다행이다. 그건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무게에 무심하다면 그건 읽혀지지 않은 채 낡아 먼지 속에 갇힌 책뚜껑만큼 슬픈 일.

 

사랑하는 일은 얼마나 고단한가. 견디고 싶은 멀미처럼, 우리는 창을 열고 먼 산을 바라본다. 그래서 사랑은 바라보기다. 희망도 그러하다. 그 잴 수 없는 무게를 우리는 매일 재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외롭기만 하다. 그저 외로우면서도 맑은 꽃 한 송이 피워 본다.

 

버려진 쇳덩이 속에서 햇빛을 짤랑거리며 핀 냉이꽃. 우리의 삶도, 죽음도, 사랑도 꼭 저만큼 숭고하고 경건했으면 좋겠다.

 

 


 

1959년 부산 영도에서 출생했다. 1995년 <시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문학을 시작했다. 늦깎이로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서부아프리카의 사하라, 스페인 카나리아섬에서 십여 년 머물렀고, 대전에서 십 년 가까이 지내면서 백년지기들을 사귀었다. 틈틈히 여행길에 오르는 떠돌이별로 사진을 좋아한다. 이십여 년 만에 귀향, 문학을 실천하고자 부산 원도심에 글쓰기공동체 <백년어 서원>을 열었다.

낮은 인문운동을 나누며 너그러운 사람들과 퐁당퐁당, 공존의 감수성, 공감의 능력을 공부 중이다. 쿠바를 네 번 다녀오면서, 문학의 소명을 일깨워준 19세기의 시인 호세 마르티를 사랑하게 되었다.

 

▶ 시집

『길의 길』

『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 (200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붉은 사하라』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젯밥과 화분』 (2008년 아르코 창작지원금, 우수도서 선정)

『몰락경전』 (2013년 아르코 창작지원금, 우수도서 선정)

 

▶ 사진에세이집

『하늘이 보이는 쪽창』

『지붕 밑 푸른 바다』

『당신은 나의 기적입니다』

 

▶ 산문집

『씨앗을 지키는 새』

『백년어』(아포리즘집)

『유쾌한 달팽이』 (2011년 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참죽나무 서랍』

『쿠바, 춤추는 악어』 (2015년 부산문화재단 <올해의 문학>선정)

『스미다』(시에세이)

『호세 마르티 평전』 (2019년 부산문화재단 지원금 수혜, 우수도서 선정)


 

좋아요1

공유하기

글 요소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댓글 0

내용을 입력해주세요.

비밀글 글쓰기

이전

1 2 3 4 5 ··· 1241

다음

 

해피루치아

친구

친구

친구

친구 친구

열기/닫기 버튼

열기/닫기 버튼

최근글과 인기글

    •  

 

    •  

동백꽃이 피었다/ 한복용

2021.03.16 21:20

    •  
    •  

 

    •  

육탁/김희자

2021.03.15 12:31

    •  
    •  

 

    •  

눈빛/ 박금아

2021.03.05 12:34

  •  
    •  

 

    •  

해빈수첩/백석

2021.01.13 15:32

    •  
    •  

 

    •  

자깔자깔*, 곱새담 너머 쏘구랑별 째듯하니/ 박금아

2021.01.27 00:14

    •  
    •  

 

    •  

사북 골목에서/맹문재

2021.02.20 00:07

  •  

열기/닫기 버튼

최근댓글

해피루치아03.06

칠부능선03.05

해피루치아02.28

  •  

태그

#별똥별 #바금아 #아침의 뜰 #아침의뜰 #미 #노을이 질 때

 

Calendar

2021. 03일월화수목금토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방문통계

85,982

  • 오늘 : 37
  • 어제 : 37

별똥별이야기 blog is powered by Kakao Co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