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경칩 보내고, 낮이 길어진다는 춘분(3월 20일)까지 지나니 봄기운이 완연하다. 비록 밤에는 패딩을 갖출지언정 낮에는 목-폴라에 조끼만으로도 바람을 견딜만하다.
초봄의 바람은 견딜만한데 배달업계의 비대면 시국은 여전하다.
“비대면 수령합니다. 문 앞에 두고 전화 주세요.”
“자가격리 중입니다. 문자만 주세요.”
“노크만 해주세요.”
“벨만 눌러주세요.”
전화/문자/노크/벨. 손님의 요구대로 하는데 가끔 사고가 난다.
“저희 꺼 처리 안 됐나요? 손님이 언제 도착하느냐고 전화 왔어요.”
“예??? 30분 전에 배달했는데요.”
노크/벨 소리를 못 들어서, 주소가 잘못 입력되어서... 발생하는 사고다. 대면 배달이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다. 배달세상은 여전히 겨울이다.
배달 밖 세상에도 봄은 오지 않은 모양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사고수습본부가 3월 17~18일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코로나-관련 설문조사를 했다. 이에 따르면 873명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응답했고, 스트레스의 이유로는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이 85.7%를 차지했다.
한漢나라 원제元帝 때 이름 없는 궁녀가 있었다.
원제는 수천 궁녀들의 용모를 일일이 파악할 수 없어 궁중화공 모연수에게 초상화를 그리게 했고, 그 초상화를 보고 수침들 궁녀(후궁)를 결정하곤 했다. 후궁이 되려는 궁녀들은 ‘예쁘게 그려달라며’ 모연수에게 재물을 바쳤다. 이름 없는 궁녀는 뇌물을 줄 형편이 못 되었고, 그녀의 초상화는 ‘안 예쁘게’ 그려졌다.
어느 날 남흉노의 선우 호한야呼韓邪가 원제를 알현(화친이겠지ㅋ)하기 위해 장안으로 왔다. 호한야는 많은 공물로 원제에게 문안을 올렸고, 원제는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 환대했다. 권커니 잣거니 흥이 오른 원제는 참석한 궁녀 중 하나를 아내로 맞게 해달라는 호한야의 청을 수락한다. 호한야가 지목한 여인은 바로 그 이름 없는 궁녀. 이름은 없어도 아름다웠다. 그제서야 궁녀의 얼굴을 확인한 원제는 울그락불그락 벌레 씹은 표정이 됐다. 하지만 낙장불입. 황제가 되어서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진 못하고 모연수의 모가지를 따는 것으로 분풀이를 한다.
그 이름 없던 궁녀가 바로 왕소군王昭君.
후일 당나라 시인 동백규는 왕소군을 떠올리며 3수의 오언시 〈소군원(昭君怨)〉을 남긴다.
漢道初全盛 한(漢)나라 국운 처음에는 융성해
朝廷足武臣 조정에는 무신도 넘쳐났다네
何須薄命妾 (그런데) 어이해 박명한 여인이
辛苦遠和親 멀고 고단한 화친길 올라야 했던가
掩涕辭丹鳳 눈물 감추고 단봉성을 떠나
銜悲向白龍 슬픔 삼키며 백룡대로 향하네
單于浪驚喜 선우(單于)는 놀라 기뻐했으나
無復舊時容 예전의 그 얼굴 아니었다네
胡地無花草 북방엔 꽃도 풀도 없어
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오
自然衣帶緩 허리띠 절로 느슨해진 까닭은
非是爲腰身 세요를 자랑함이 아니라오 - 참조 : 김성일 저 '고사성어 대사전'
春來不似春.
꽃과 풀이 없으면... 봄이 아니라 했다.
희망이 없으면... 봄이 아니다.
희망이란 어떤 것일까.
어둡고 긴 터널 끝에서 마주한 햇살, 흔들리는 꽃잎, 아이들의 높은 웃음소리. 그런 것들이겠지. 또 다른 곳에선 생명들이 소멸해가도 아예 모르거나 잠시 잊을 수 있다면 희망이란 놈도 언제나 근처에 있을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