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1 -정지용(1902~1950)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청춘의 열병 앓던 시절 이 시 가슴에 박혔거늘. 추운 겨울밤 상심(傷心)한 가슴 유리창에 붙어서 호호 불어 그 모습 그려보아도 이내 사라지곤 하던 얼굴. 성에에 반사된 불빛은 폐혈관 고운 실핏줄처럼 살아나는데 아아, 늬는 날개 파닥거리며 산새처럼 날아가려고만 하고. 폐병으로 자식 잃은 아비의 비통한 심경으로만 읽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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