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門) - 이영광(1967~ )
가지 말아야 했던 곳
범접해서는 안 되었던 숱한 내부들
사람의 집 사랑의 집 세월의 집
더럽혀진 발길이 함부로 밟고 들어가
지나보면 다 바깥이었다
날 허락하지 않는 어떤 내부가 있다는 사실,
그러므로 한 번도 받아들여진 적 없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나는 지금
무엇보다도, 그대의 텅 빈 바깥에 있다
가을바람 은행잎의 비 맞으며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닿아서야
그곳에 단정히 여민 문이 있었음을 안다
생활에서, 사랑에서, 그리고 글쓰기에서, 겹겹의 문을 열어젖혔으나 그때마다 그 안에 또 다른 문들이 단단하게 여며져 있어, 여전히 문밖에 세워
졌었다…면! 거쳐 온 삶의 경로들이 지나고 나니 다 바깥이었다는, 이 문 앞에 선 장탄식과 환멸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떤 구걸로도 허락되지 않는 내부들이 있는데, 그 안을 들여다볼 수조차 없는 삶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일찌감치 생의 의욕을 제거해버린 절망이라면 차라리 아프다. <김명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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