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천천히 와'-정윤천(1960)

~Wonderful World 2010. 10. 27. 13:48

'천천히 와'-정윤천(1960)

 

 

천천히 와

천천히 와

와, 뒤에서 한참이나 뒤울림이 가시지 않는

천천히 와

상기도 어서 오라는 말, 천천히 와

호된 역설의 그 말, 천천히 와

오고 있는 사람을 위하여

기다리는 마음이 건네준 말

천천히 와

오는 사람의 시간까지, 그가

견디고 와야 할 후미진 고갯길과 가쁜 숨결마저도

자신이 감당하리라는 아픈 말

천천히 와

아무에게는 하지 않았을, 너를 향해서만

나지막이 들려준 말

천천히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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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와, 보고 싶은 마음에 버선발로 뛰쳐나온 "와"를 슬쩍 뒤에서 잡아당기며 오되게 단속을 시키는 말,

"천천히"는 기도다.  후미진 고갯길과 가쁜 숨결 걱정에 그림움에 돌을 얹고 기다리는 지극한 자세다.  그 앞

에 켜놓은 촛불 같은 말, 정화수 같은 말, 흔하게 주고 받는 말 한마디에 이토록 저린 뜻이 숨어 있었구나.

<손택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