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 김요섭(1927~97)
태초의 말씀과 함께
하늘에는 불과 음악이 있었다
하늘 가득히 울려퍼졌던 음악
사람들을 찾아 마을 위로 거리 위로
휘날리며 오는 동안
소리는 스러지고 눈송이가 되었다
나뭇가지 위
음악의 흰그림자로 앉은 눈송이
눈송이로만 있기에는 심심했다
나무 속 심줄을 타고 녹아드는
뿌리 끝에서 소리가 나고
흙들이 귀를 기울였다
어느 태초의 아침 같은
아침
대지는 풀포기를 토하면서
허공에다 새를 날렸다
음악처럼
눈은 그냥 눈이 아니라 실은 음악이라는 것, 그래서 소리 대신 아우성의 몸짓으로 춤을 춘다는 것, 눈은 그냥 눈이 아니라 그림자라는 것, 음악의 그림자라는 것, 사람들이 잠든 새에 온 세상에 눈이 내렸다. 눈 덮인 지붕과 거리와 논밭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림자에 덮인 대지가 무엇을 할 것인가, 대지가 풀 기를 토하면서 새를 날릴 때 찬연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 그러니까 풀은, 풀포기는 음악의 어린 병아리새끼들, 포르르 나는 새는 전생엔 한 송이 두 송이 하얀 눈송이였다고. <최정례·시인>
음악.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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