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접시에 올라온 하얀 가자미 한 마리 - 김승희 (1952~ )
나는
‘나는’이라든가 ‘내가’라든가 하는
말을 잊어야만 한다고
또한 ‘나의’라든가 ‘내’라든가 하는 말도 다 버려야만 한다고
바다처럼 푸른 식탁보가 깔린
작은 나무식탁 앞에서
하얀 접시에 올라온 하얀 가자미 토막들을 보면서
문득 생각나는 것이다
이 은은하고 도도한 광채 어린, 이 접시는 속삭인다
흰 살 가자미의 토막, 껍질, 지느러미, 빼낸 창자,
형제자매, 부모, 고향… 그런 것을 다 복원해낼 수 있는가,
유언도 없이 잡혀 와 토막 난 가자미 한 마리,
내가 주어가 될 수 없다는 것
나의 소유격도 결국은 다 파도 거품처럼 무의미하다는 것
그렇다면 여기서는 접시가 주어란 말인가?
실향의 접시가, 도마, 푸른 칼자루가 주어란 말인가?
오른쪽으로 두 눈이 쏠려 있는 가자미
껍질을 다 벗기우고 하얀 살만 토막으로 접시 위에 올라와 있다
희망의 현실적 근거가 한도 없지 않은가?
희망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닌가?
갈 데까지 다 간 마음…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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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는 언제나 파괴적인 힘으로 개개에게 관여한다”는 내용이 이어지고 있으나 이 지면의 한계가 이 세계의 잔인한 조건들처럼 이 시를 토막 내 버리고 만다. 결국, 그렇게. <최정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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