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도봉근린공원 - 권혁웅(1967~ )

~Wonderful World 2012. 2. 17. 01:01

도봉근린공원 - 권혁웅(1967~ )


얼굴을 선캡과 마스크로 무장한 채

구십 도 각도로 팔을 뻗으며 다가오는 아낙들을 보면

인생이 무장강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동계적응훈련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한 지 몇 년인데, 지갑은 집에 두고 왔는데,

우물쭈물하는 사이 윽박지르듯 지나쳐 간다

철봉 옆에는 허공을 걷는 사내들과

앉아서 제 몸을 들어 올리는 사내들이 있다 몇 갑자

내공을 들쳐 메고 무협지 밖으로 걸어 나온 자들이다

애먼 나무둥치에 몸을 비비는 저편 부부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을 닮았다

영역표시를 해놓는 거다

신문지 위에 소주와 순대를 진설한 노인은

지금 막 주지육림에 들었다

개울물이 포석정처럼 노인을 중심으로 돈다

약수터에 놓인 빨간 플라스틱 바가지는 예쁘고

헤픈 처녀 같아서 뭇입이 지나간 참이다

나도 머뭇거리며 손잡이 쪽에 얼굴을 가져간다

제일 많이 혀를 탄 곳이다 방금 나는

웬 노파와 입을 맞췄다

맨발 지압로에는 볼일 급한 애완견이 먼저 지나갔고

음이온 산책로에는 보행기를 끄는 고목이 서 있으니

놀랍도다, 이 저녁의 평화는 왜 이리 분주한 것이며

요즈음의 태평성대는 왜 이리 쓸쓸한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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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평, 30평 아파트에 영역 표시를 해가며, 나무둥치에서 기를 뺏고, 동계훈련하듯 우리는 결단코 100살을 살고야 말 것이다, 이 태평성대의 쓸쓸함이라니, 부활의 약이라도 발명해 먹으면 이 쑥스러운 슬픔이 잊혀질까? <최정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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