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얼음의 찰나 - 푸른 호랑이15

~Wonderful World 2012. 3. 15. 19:33

얼음의 찰나 - 푸른 호랑이15

- 이경림(1947~ )

그리고……

나는 골목으로 나가 눈을 쓸었다

얼어 붙은 눈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자꾸 콧물이 났다 손아귀가 아팠다


눈 쓸린 자리에 얼어붙은 발자국 하나가 누워 있었다

푸른 플라스틱 빗자루를 움켜쥔 채 나는 물끄러미

그걸 보고 있었다

누운 채 그도 나를 보고 있는 듯했다


그를 거기 두고, 발은 무얼 쫓아간 것일까

아우트라인이 선명한 한 뼘 남짓의

얼음의 찰나가 반짝

햇살에 빛났다


그때

나의 어깨를 툭 치며 503호가 말했다

-뭐 잃어버린 거라도 있어?

-으응 뭐……

그녀는 호피 코트를 입고 호랑이처럼 웃었다

-밤새 눈이 퍼붓더니 하늘이 유난히 푸르네


처음 듣는 노래 같은 아침이 몰려오고 있었다

우연이 아니라 무슨 필연적인 이유로 발자국은 거기 버려졌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이 그것을 바라본 순간에 얼음의 찰나가 반짝 빛났던 것도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누구의 얼어붙은 발자국이었을까. 아침이 처음 듣는 노래처럼 몰려오는 것도 그 발자국이 거기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최정례·시인>

얼음의 찰나.hwp

얼음의 찰나.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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