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편竹篇 1 ㅡ여행 - 서정춘(1941~ )
여기서부터, ㅡ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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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고향은 아무래도 남쪽이다. 이즈음은 식물대의 북방한계선도 몇백 리쯤은 죄다 북상한 터이지만, 대꽃이 피는 마을이라니 그렇다. 수구초심. 대꽃이 핀다는 것은 한 살이를 마감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백년이란 우리네 삶이겠다. 아마도 시인은 칸칸마다 먹빛 차창을 달고 달리는 완행열차를 타고 남녘을 떠났을 것이요, 그 먹빛 차창처럼 인생도 그만큼 막막했으리라. 지나가버린 고향의 세월이 아득히 멀듯이, 기차의 운행 또한 아득히 멀다. 아마도 그는 고향으로 자주 걸음을 하지 않는 것이 틀림없지 싶다. 그러니 이번 생의 일을 마치는 것이 고향만큼이나 아득한 것이다. 저 60년대의 완행열차가, 그것이 내는 칙칙폭폭이 그에게는 남녘의 마디 굵은 푸른 대와 같은 것이다. 서정춘 시인은 죽편(竹篇)만 아니라 모든 시를 죽편(竹片)에 새기듯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쓴다. (장철문·시인·순천대교수)
죽편竹篇 1 ㅡ여행.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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