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논두렁-이덕규(1961~)

~Wonderful World 2012. 9. 24. 04:40

논두렁 - 이덕규(1961~ )

찰방찰방 물을 넣고

간들간들 어린모를 넣고 바글바글 올챙이 우렁이 소금쟁이 물거미 미꾸라지 풀뱀을 넣고

온갖 잡초를 넣고 푸드덕, 물닭이며 논병아리며 뜸부기 알을 넣고

햇빛과 바람도 열댓 마씩 너울너울 끊어 넣고

무뚝뚝이 아버지를 넣고 올망졸망 온 동네 어른 아이 모두 복닥복닥 밀어 넣고

첨벙첨벙 휘휘 저어서 마시면,

맨땅에 절하듯

누대에 걸쳐 넙죽넙죽 무릎 꿇고 낮게 엎드린 생각들 길게 이어붙인

저 순하게 굽은 등짝에 걸터앉아

미끈유월, 그 물텀벙이 한 대접씩 후르륵 뚝딱 들이켜면

허옇게 부르튼 맨발들 갈퀴손가락들 건더기째 꿀떡 꿀떡 넘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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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댁의 배가 새록새록 불러오듯 벼에 알이 들어차고, 때그락때그락 햇살의 알갱이가 들고, 짜드락짜드락 햇살의 빛깔이 드는 철이다. 오늘, 어찌 지난 오뉴월 땡볕을 다시 생각지 않으랴. 이 시를 읽고는 그냥 두 손을 번쩍 들었다, 화성의 농사꾼 이덕규 시인에게. 어떤 주둥아리가 이 육덕 넘치는 말들을 주워섬기랴. 얼마 전 해남에 볼일이 있어서 내려왔다고, 이곳에도 들렀는데 주변머리도 없고 인정머리도 없는 나는 이 상농사꾼을 여관잠을 재워 보냈다. 사랑채도 머슴방도 갖지 못한 요즈막 사내들의 살림살이가 실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그랬다. 나는 도무지 이 시에 대해서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그냥 무릎이나 칠 수밖에. 나는 그릇이 작아서, 이런 시 보면 엄청 질투난다. 도대체 이덕규는 왜 시인이 된 걸까. 왜 우리 앞에 알짱거리는 걸까. 이렇게 말해놓고 봐도 시 좋다! [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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