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시월-이시영

~Wonderful World 2012. 10. 8. 00:45

시월 - 이시영

 

 

심심했던지 재두루미가 후다닥 튀어 올라

 

푸른 하늘을 느릿느릿 헤엄쳐간다

 

그 옆의 콩꼬투리가 배시시 웃다가 그만

 

잘 여문 콩알을 우수수 쏟아놓는다

 

 

그 밑의 미꾸라지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봇도랑에 하얀 배를 마구 내놓고 통통거린다

 

먼 길을 가던 농부가 자기 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만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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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햇살 좋은 날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그 논이 생각난다. 그날 아버지와 함께 논에 있었다는 게 참 좋다. 나는 아버지가 논을 둘러 내놓은 물길에 알을 슬러 올라온 양구라지(어려서 ‘참종개’를 그렇게 불렀다)를 잡고 있었고, 아버지는 잠깐 일손을 놓고는 논둑에 서서 허리를 펴며 웃고 있었다. 그날 그 순간이 떠오르는 것이 행복하다. 눈을 감지 않아도 그날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그때가 눈에 선하다. 그때가 아마 여름걷이 임박한 때였을 것이다. 시인의 아버지라고 해도 그만인, 나의 아버지라도 해도 그만인 농부가 가을걷이를 시작하기 전 잠깐 일손이 빌 때, 그 가을에 대해 의젓해져서 어디 볼일을 보러 간다. 시 속의 재두루미와 콩꼬투리와 미꾸라지와 농부가 내게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다가온다. 시를 회화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그것이 그르다고 생각한다. 시는 시각적 평면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것 자체로 막 살아 움직인다. 무슨 소리를 내고, 냄새를 피우고, 삶에 겹고, 먼 길을 간다. 시는 회화가 아니다. 회화가 단순한 색과 선이 아니듯이. <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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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 - 김신용(1945~ ).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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