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긴 밥 - 이상교(1949~ )
강아지가 먹고 남긴
밥은
참새가 와서
먹고,
참새가 먹고 남긴
밥은
쥐가 와서
먹고,
쥐가 먹고 남긴
밥은
개미가 물고 간다.
쏠쏠쏠
물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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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편안하다. 그러나 막상 시를 옮겨 적어놓고 보니 할 말이 없다. 왜일까…. 옛 이야기의 ‘꽁지따기’가 떠오르고, ‘길로 길로 가다가’가 떠오르고, 조 한 알을 가지고 쥐를 거쳐, 고양이를 거쳐…. 결국 정승집 딸한테 장가가기에 이른 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 시린 초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매어 달린 까치밥이 떠오른다. 그리고 어느 겨울 아침 오랜만에 상에 올랐던 갈치, 밥알에 섞여든 그 가시를 반가워하던 ‘재동이’가 떠오른다. 고구마 자루를 드나들던 고 조그마한 생쥐의 말간 눈과 앙증맞은 귀가 떠오른다. 나무 널 밑으로 어기영차 알을 메고 나뭇잎을 메고 끝없이 가던 개미의 행렬이 떠오른다. 장날 신작로를 따라 보따리를 이고 가던 아랫마을 아주머니들의 행렬이 떠오른다. “그려이?” “저런, 어쩌끄나!” 사투리가 들려온다. 그예, ‘쏠쏠쏠’에 눈이 머문다. 쏠쏠쏠, 쏠쏠쏠 자꾸 되뇌어 본다. “다 먹었다!” 빈 밥그릇을 들어보이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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