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침 - 나희덕(1966~ )
어치 울음에 깨는 날이 잦아졌다
눈 부비며 쌀을 씻는 동안
어치는 새끼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친다
어미새가 소나무에서 단풍나무로 내려앉자
허공 속의 길을 따라
여남은 새끼들이 푸르르 단풍나무로 내려온다
어미새가 다시 소나무로 날아오르자
새끼들이 푸르르 날아올라 소나무 가지가 꽉 찬다
큰 날개가 한 획 그으면
모화(模畵)하듯 날아오르는 작은 날개들,
그러나 그 길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가 곧 오리라
저 텃새처럼 살 수 있다고,
이렇게 새끼들을 기르며 살고 있다고,
쌀 씻다가 우두커니 서 있는 내게
창밖의 날개 소리가 시간을 가르치는 아침
소나무와 단풍나무 사이에서 한 생애가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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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시인과 참 오래 만나왔다. 그러나 막상 그의 시에 대해 말하려 하니, 고를 것이 따로 없고, 쓸 말이 따로 없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는 그가 눈에 선한데, 그럴 뿐, 문장이 되지 않는다. 굳이, 애잔하다고 할까, 사는 게 그렇다고 해야 할까, 이런 거 아예 작파해야 할까. 다만, 어미 새를 따라 허공을 걷는 연습을 하는 새끼 어치들이 제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상이 눈에 선하다. 부디, 때맞춰 ‘모화’를 마치고 제 숲으로 날아가 다부지게 둥지를 틀기를. 실다운 짝을 맞을 한 마리 텃새로서. 그도 나도 나이 들어갈수록 서로 살기 벅차고 딱히 만날 일도 드물어져 어쩌다 안부전화나 하지만, 간혹 만나도 왔느냐 가느냐 그뿐이지만, 건강하기를. 그래야 늘 씩씩하고 당차고 따듯할 수 있으므로. 이 겨울 아침에 새삼스럽게. (장철문·시인·순천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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