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나비 -김기림(1908~?)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나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도라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바다를 본 일이 없는, 그래서 그 깊이를 모르는 나비는 바다가 무섭지 않다. 자유롭게 날갯짓을 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청무밭인가 해서 잠시 날개를 쉬려 내려앉았으나 차가운 바다 물결에 그만 어린 날개가 젖고 만다. 너무 멀리 온 탓일까 아니면 젖은 날개 탓일까. 힘겹게 지쳐 돌아온 나비에겐 아직 꽃이 피지 않은 3월의 바다(청무밭)가 서글프고 젖은 날개 허리에 걸린 밤바다의 초승달이 시릴 뿐이다. 겁 없이 비행에 나선 나비에게서 나는 모더니스트 청년 김기림을 떠올린다. 새로운 문명과 도시의 아이들을 주장한 근대 모더니스트. 그러나 정작 높이 평가받는 작품은 문명과 도시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근대적 언어와 감수성을 보여준 이 시를 비롯한 몇몇 작품이라는 아이러니를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나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도라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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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본 일이 없는, 그래서 그 깊이를 모르는 나비는 바다가 무섭지 않다. 자유롭게 날갯짓을 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청무밭인가 해서 잠시 날개를 쉬려 내려앉았으나 차가운 바다 물결에 그만 어린 날개가 젖고 만다. 너무 멀리 온 탓일까 아니면 젖은 날개 탓일까. 힘겹게 지쳐 돌아온 나비에겐 아직 꽃이 피지 않은 3월의 바다(청무밭)가 서글프고 젖은 날개 허리에 걸린 밤바다의 초승달이 시릴 뿐이다. 겁 없이 비행에 나선 나비에게서 나는 모더니스트 청년 김기림을 떠올린다. 새로운 문명과 도시의 아이들을 주장한 근대 모더니스트. 그러나 정작 높이 평가받는 작품은 문명과 도시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근대적 언어와 감수성을 보여준 이 시를 비롯한 몇몇 작품이라는 아이러니를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바다와 나비 -김기림(1908~1997).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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