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 위에서 떨다-이영광(1965~ )
고운사 가는 길산철쭉 만발한 벼랑 끝을
외나무다리 하나 건너간다
수정할 수 없는직선이다
너무 단호하여 나를 꿰뚫었던 길이 먼 곳까지
꼿꼿이 물러나와
물 불어 계곡 험한 날
더 먼 곳으로 사람을 건네주고 있다
잡목 숲에 긁힌 한 인생을
엎드려 받아주고 있다
문득, 발 밑의 격랑을 보면
두려움 없는 삶도
스스로 떨지 않는 직선도 없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 이 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지나갔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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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시인은 물불 안 가리는 세상을 꿈꾼다. 1억5000만㎞를 엄청난 속도로 달려온 불(햇빛)이 강물에 닿아도 꺼지질 않고 활활 타 물의 속살까지 환하게 비추고 아이들이 알몸으로 그 물속에서 마음껏 노는 물과 불을 가를 수 없는 한 몸 같은 찬란한 세상(『물불』). 그것을 위해 그는 현실의 아픈 천국을 온몸에 새겨 넣는 직선의 시를 쓴다. 벼랑 끝에서 만난 외나무다리는 물러설 수 없는 수정할 수도 없는 직선이다. 단호한 그 직선은 물이 불어 험한 계곡 사이에 엎드려 숲의 잡목에 긁힌 인생을, 사람들을 온몸으로 받아 더 먼 곳으로 건네주고 있다. 거침없어 보이는 직선이라 해도 왜 두려움이 없겠는가. 오늘 아침에도 부들부들 떨며 외나무다리 길을 건너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는 기꺼이 험난한 벼랑 위에 직선이 되어 두려운 삶들을 받아주며 떨고 있을 것이다.(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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