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붉은 시간-우은숙(1961~)

~Wonderful World 2014. 3. 27. 18:24

붉은 시간-우은숙(1961~)

 

삶이 꽤

악착같이 들러붙을 때가 있다

절박한 시간만이 내게로 올 때가 있다

퇴근길

쪼그라든 해가 등뒤에 걸린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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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천장에는 반야용선이 있습니다. 생전에 덕을 많이 쌓은 신심 깊은 중생들을 피안의 세계인 극락으로 인도하는 배입니다. 용이 끌고 갑니다. 거기 외줄에 나무로 조각된 악착보살이 대롱대롱 매달려 흔들립니다. 악착보살은 이 배를 놓친 어느 보살이 발을 구르다가 배에서 던져준 밧줄에 악착같이 매달려 극락정토에 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악착같다는 말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삶도 악착같이 내게 들러붙지만 나도 악착같이 그 삶에 들러붙습니다. 삶도 나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절박한 시간이 와도, 믿었던 해마저 쪼그라들어 굽은 등 뒤에 걸려도 턱턱 붉은 숨을 내쉬며 외줄을 붙듭니다. 그 줄에 악착같이 매달려 고난의 바다를 건넙니다. 돌아보면 그 악착같았던 붉은 시간이 삶을 살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강현덕·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