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 노을 - 고정국(1947~ )

오늘 이 해역을 누가 혼자서 떠나는갑다.
연일 흉어에 지친 마지막 투망을 남겨둔 채
섬보다 더 늙은 어부 질긴 심줄이 풀렸는갑다.
이윽고 섬을 가뒀던 수평선 태반 열어 놓고
남단의 어족을 다스린 지느러미를 순순히 펴며
바다는 한 척 폐선을 하늘 길로 띄우나니.
우리가 잔술 내리고 노을 앞에 입을 다물 때
수장水葬을 치러 낸 바다가 무릎께 와 흐느끼고
까맣게 타 버린 섬이 다시 촛대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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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국토 최남단의 섬. 하늬바람, 샛바람, 마파람, 높새바람, 동마파람, 갈바람 등이 끊임없이 불어대는 바람의 왕국. 그 왕국의 늙은 백성 한 명이 하늘로 올랐나 봅니다. 흉어에 지친 투망과 그 투망처럼 질겼던 심줄을 내려놓고 혼자서 먼 길을 떠났나 봅니다. 바다는 평생을 거친 바람과 더 거친 파도와 싸우던 그의 낡은 고깃배까지 하늘로 띄워줍니다. 폐선이 된 고깃배는 어부, 그 자체였습니다. 장엄한 수장(水葬)으로 하늘은 더 붉어집니다. ‘마라도’ 하면 “짜장면 시키신 분!”을 먼저 연상했다는 어떤 사람이 이 시를 읽고 마라도 노을처럼 눈시울 붉어졌다고 말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강현덕·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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