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 정혜숙(1957~ )

논물이 그려놓은 진경산수화 한 폭을
왜가리 날개 접어 사뿐히 내려앉더니
잽싸게 낚아채 버린다
구겨진
고요 한 점
여름을 들어 올리는 노고지리 높은 음계에
감자밭 화답하듯 이랑마다 흰 꽃이다
들녘은 숨 가쁜 소리
밀 보리 익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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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또 6월을 맞게 되네요. 산이, 들판이, 길이, 온통 녹색입니다. 세상을 다 초록으로 물들일 기세로 나무라는 나무, 풀이라는 풀들은 일제히 푸른빛을 뿜어냅니다. 분주하고 소란스럽습니다. 그러나 눈부십니다. 여기는 벽촌, 논과 밭들도 6월을 맞네요. 잠시 고요했던 ‘논물’에 ‘왜가리’ 한 마리가 앉았다 떠나고 ‘감자밭’에는 ‘이랑마다 흰 꽃이’ 피었네요. ‘노고지리’의 노래도, ‘밀 보리’가 익어가는 ‘숨 가쁜 소리’도 들리네요. 벌써 여름이 보이네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어떤 나그네가 이 들녘을 지나갈 것만 같습니다. <강현덕·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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