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버린 집 - 문충성(1938~ )

허물어 버린 집이 요즘
꿈속에 나타나 온다
할머니 어머니가 사셨다
돌아가시고 나서
허물어버리면 안 될 집을 허물어버렸다
그 할머니 어머니 꿈속에 없어도
그 집이 꿈속에 나타나 온다
대추나무 당유자나무 후피향나무(…)
저 멀리 혀 빼물고 헬레헬레
진돗개 진구가 나타나 온다
시간이 사라져 없는 풍경 속으로
오늘도 들어가 바라보다가 나도
풍경이 된다 어느새
꿈을 꾸지 않고 대여섯 시간을 내리 잘 수 있으면 건강한 상태라고 한다. 몸이 불편하거나 마음이 괴로운 날 밤에는 뒤숭숭한 꿈에 시달리기 쉽다.
사람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인물보다는 장소가 꿈에 자주 나타난다. 잠에서 깨어나면, 꿈에 본 곳에 대한 기억이 오래 남는다. 어렸을 때 살던 집·방·마당·골목길이 흑백영화 영상처럼 떠오른다. 가끔씩 고인이 된 식구들도 만나지만, 그들은 절대로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깨어나면 꿈속의 해후가 더욱 안타까워지고, 풍경만 어슴푸레 잔영으로 남는다. 그 빛바랜 기억 속으로 들어가면, 그곳은 꿈인가, 삶인가.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파트나무 - 윤성택(1972~ ) (0) | 2014.07.13 |
---|---|
내 작은 비애 - 박라연(1951~ ) (0) | 2014.07.08 |
묵뫼 - 신경림(1936~ ) (0) | 2014.06.24 |
쉬었다 가자 - 김형영(1945~ ) (0) | 2014.06.24 |
그늘의 발달 - 문태준(1970~ ) (0) | 2014.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