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꽃잎 2 - 김수영(1921~68)

~Wonderful World 2014. 12. 1. 09:34

꽃잎 2 - 김수영(1921~68)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苦惱)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

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가는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가는 소란을

노란 꽃을 받으세요 원수를 지우기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우리가 아닌 것을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거룩한 우연(偶然)을 위해서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비뚤어지지 않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소음이 바로 들어오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다시 비뚤어지게

( … )


죽음을 예견한다는 말은 흔하고, 기껏해야 시사적이다. 생의 압축인 시의 손아귀 손가락 사이를 죽음이 삐죽삐죽 빠져 나오기도 하고, 좋은 시가 육체적 죽음을 예견하는 데서보다는 일상 속 죽음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며 지속적으로 사적인 죽음을 죽음의 공공성으로 전화하는 데서 근근이 오고, 이것이 최상의 시적인, 생애적인 아름다움 가운데 하나. 이 강력하게 현대적인 경어투가 김소월 혹은 서정주의 그것을 영영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낙원으로 만들었다. 1967년 5월의 일이다. <김정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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