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1948~ )

~Wonderful World 2014. 12. 30. 16:49

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1948~ )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 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내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낸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 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전혀 소박하지 않다. 여전히 진행형 제목에 걸맞게 리듬이 경쾌, 강건하고 순조롭다. 화자의 생각 반전과, 깨달음과 마지막 꾸중까지도. 소박 자체는 미덕이 아니다. 아직도 희망을 언명하며 소박을 피하고 싶다면, 이 리듬을 타고 더 나아가라. 불행을 알기에 불행한 인간이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다행을 넘어, 얼마나 축복인가를 깨달을 때까지. <김정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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