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 이진명(1955~ )

나는 나무에 묶여 있었다. 숲은 검고 짐승의 울음 뜨거웠다. 마을은 불빛 한 점 내비치지 않았다. 어서 빠져나가야 한다. 몸을 뒤틀며 나무를 밀어댔지만, 세상 모르고 잠들었던 새 떨어져내려 어쩔 줄 몰라 퍼드득인다. 발등에 깃털이 떨어진다. 오, 놀라워라. 보드랍고 따뜻해. 가여워라. 내가 그랬구나. 어서 다시 잠들거라. 착한 아기. 나는 나를 나무에 묶어 놓은 자가 누구인지 생각지 않으련다. 작은 새 놀란 숨소리 가라앉는 것 지키며 나도 그만 잠들고 싶구나.
(…)
‘비전’은 훌륭한 시인 대부분이 치르는 통과 의례 같은 것이지만 대가의 경우에도 성공작이 드문데, 이 작품은 더 희귀하게 신비의 안온에 달하고 있다. 그 모든, 묶였다 풀려나는 신비가 ‘세상에서 가장 큰 눈을 한 공포’ ‘강물도 목을 죄던 어둠’ ‘허옇고 허옇다던 절망’에 다가서기 위한 것이었다는 반전에서 그 안온이 경악으로 심화한다. 마구 떨리는 새 가슴처럼. <김정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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