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사막

~Wonderful World 2015. 8. 20. 07:05

사막-유재영 (1948∼)

칼을 든 사내의 날랜 손놀림 끝에 따그락! 모래 언덕 너머로

사라지는 어린양의 턱관절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자작나무

널빤지 위에 놓인 채 식지 않은 한 덩이의 조문(弔問), 방금

전까지 묶여 있던 말뚝에는 아직 바둥거리는 생존이 뒷발에

힘을 모은다

칼을 든 사내의 날랜 손놀림이 금세 살아 있던 어린양의 숨통을 끊는다. 이 잔혹한 살상에는 한 점의 자비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뒷발에 온 힘을 모으고 “바둥거리는 (어린양의) 생존”을 그린 잔상은 이토록 생생하다. 살아남는 일은 타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 산 것들은 살기 위해 반드시 외부에서 자양분을 가져와야 하니, 이 먹고 먹힘의 세계에서 남을 먹는 것은 비루하면서도 성스럽다. 그것이 비루한 것은 남의 생명 약탈이기 때문이고, 거룩한 것은 생명 부양 행위인 까닭이다. <장석주·시인>

 

사막 - 유재영 (1948∼).hwp


사막 - 유재영 (1948∼).hwp
0.02MB

'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뒷골목 풍경   (0) 2015.08.24
외딴섬  (0) 2015.08.22
손등 - 고영민(1968~ )   (0) 2015.08.17
검은 빗속에서   (0) 2015.08.17
비 가는 소리- 유안진(1941~ ) -  (0) 2015.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