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손등 - 고영민(1968~ )

~Wonderful World 2015. 8. 17. 18:51

손등 - 고영민(1968~ )

울고 싶을 때 울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
어떤 미동(微動)으로 꽃은 피었느니
곡진하게
피었다 졌느니
꽃은 당신이 쥐고 있다 놓아버린 모든 것
울고 싶을 때 울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
마음이 불러
둥근 알뿌리를 인 채
듣는
저녁 빗소리

배롱나무와 자귀나무의 꽃은 손꼽을 만한 여름 꽃이다. 둘 다 붉고 아름다운 꽃들이다. 배롱나무 꽃을 보다가 문득 “꽃은 당신이 쥐고 있다 놓아버린 모든 것”이라는 시구를 떠올렸다. 생물 종(種)들이 궁극의 목적으로 삼는 것은 자기 복제다. 꽃과 열매는 식물 종들이 다음 세대에게 제 생명을 복제해 넘겨주는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꽃은 식물적 생명의 파동이자 존재의 융기(隆起)다. 꽃이란 동물의 생식과 섹스의 범주에 드는 일이다.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다. 꽃이 그렇듯이 사랑은 존재의 본성이자 열락이다. “둥근 알뿌리를 인 채” 저녁 빗소리를 듣는 이는 사랑에 빠진 자다. <장석주·시인>


 

손등 - 고영민(1968~ ).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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