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아이스<사실 나는 귀신이다 산목숨으로서 이렇게 외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 김경주(1976~)

문득 어머니의 필체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고향과 나 사이의 시간이
위독함을 12월의 창문으로부터 느낀다
낭만은 그런 것이다
이번 생은 내내 불편할 것
골목 끝 슈퍼마켓 냉장고에 고개를 넣고
냉동식품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만져버린 드라이아이스 한 조각,
결빙의 시간들이 피부에 타 붙는다
저렇게 차게 살다가 뜨거운 먼지로 사라지는
삶이라는 것이 끝내 부정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
원점(“어머니” “고향”)에서 멀리 나와 있는 생은 불안하다. 원형(原型)에서 멀어질 때 주체는 분열을 겪는다. 어머니/고향─나 사이의 채워지지 않는 거리, 이 격리의 다른 이름들이 외로움이고 “위독함”이고 “불편”이다. 시인은 자신의 생이 “내내” 불편할 것이라고 고백함으로써, 이 불안이 본질적인 것임을 자인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거처를 잃은 자들이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드라이아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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