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우시장
고두현(1963~)
판 저무는데
저 송아지는
왜 안 팔아요?
아,
어미하고
같이 사야만 혀.
저무는 우시장 한쪽, 순식간에 물기가 돈다. 날은 저물고 배는 고프고 집에는 가야 하는데 아이는 송아지를 갖고 싶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어미 소와 송아지를 함께 살 여력이 전혀 없다. 게다가 아직 젖을 떼지 않은 송아지까지 우시장에 데리고 온 사람은 또 어땠을까? 급히 소를 팔아 자식의 학비라도 마련하고 싶었던 것일까? 매매는 이루어지지 않고, 아이의 눈에는 송아지의 눈망울이 어른거리고, 어스름은 가난처럼 우시장으로 내려앉고 있었을 것이다. 기억을 호출할 때 가끔 따끔거리는 통증을 느낄 때가 있다. 가진 게 없었지만 사람이 사람의 마음으로 살던 시간을 떠올릴 때 특히 그렇다.
<안도현·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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